어른스럽게 표현하는 법

사람이니까요

by 제이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뭐냐? 부모가 그걸(감정표출) 빼앗은 정도도 아니고, 아예 막은 사람들입니다. (중략) '그 원천봉쇄를 하지 않았는데요?'라고 부모님들이 많이 항변하시거든요. 아니요, 하셨어요. '우리 애는 참 어른스러워'. '어른스럽다'라는 게 뭐냐 하면 기쁠 때 기뻐하지 않고, 슬플 때 슬퍼하지 않고, 감정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아예 표현하지 않는 거 있죠? 그때 어른스럽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아이는 아이다워야죠. 어른스럽다는 건 우리 애는 비정상이라는 뜻이에요."


사랑은 신뢰를 근원으로 한다.

연인의 행복을 위해 언제라도 노력할 준비가 되어있는 만큼 상대방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믿고, 서슴없이 아픔을 나누고 기대고 싶은 만큼 상대방도 경계심을 풀어줄 것이라 믿는다. 연인을 향한 나의 마음이 나날이 커져가는 것처럼 나를 향한 연인의 마음도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서로의 마음가짐이나 그 크기의 차이를 자각하는 순간, 서로의 관계와 그 관계를 둘러싸고 있던 신뢰에 금이 가기도 한다.


때문에 여러 심리학 전문가들은 연인, 부부 사이의 주기적인 감정표현을 권고한다. 특히, 막연하고 아리송한 표현 대신 구체적이고 적확한 언어를 강조한다.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잦게 표현함으로써 관계에서 서로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상대에 맞춰 자신의 발걸음을 늦추거나 재촉하면서 더 견고하게 관계를 다지는 것이다. 조그마한 공통점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것이 감사하게 연인관계 발전으로 이어졌을지 몰라도, 그 공통점은 상대를 이루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 십수 년, 혹은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상대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서 차원이 다른 경험을 마주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커져가는 속도와 마음을 표현하는 법뿐만 아니라 사랑 자체를 대하는 태도조차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록 인간이 지성을 가진 동물일지 몰라도, 이성보다 감정이 지배적인 연인관계에서 이런 차이는 불안과 불만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관계를 해치는 주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 만큼 상호 간의 감정표현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위 김경일 교수의 말씀처럼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감정표출을 통제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직한 감정표현이 어색하기 일쑤이다.

많은 아이들은 부모의 '어른스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기쁠 때 마냥 기뻐하지 않고, 슬플 때 마냥 눈물을 흘리지 않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떻게든 짓눌러 속으로 삭이면 '어른스럽다'라고 칭찬을 들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20대 후반 정도에 들어서면 왜 부모가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칭찬으로 사용했는지 깨닫게 된다. 많은 상황에서 내가 기쁨을 느끼더라도 나보다 더 마땅히 기뻐해야 할 사람이 있고, 내가 슬픔을 느끼더라도 나보다 더 마땅히 슬퍼해야 할 사람이 있다.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지 않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상대를 위한 배려이고 예의일 수 있다. 하지만 어릴 때는 그런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부모님의 '어른스럽다'라는 칭찬을 듣기 위해 감정을 절제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히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습성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인간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나갈 때 필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알맞은 때에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면 계속 손해 보고 양보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진정하게 원하는 것은 영영 손에 쥘 수 없고, 늘 차선이나 차차선을 선택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불만이 쌓이게 되고, 이가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경우, 가까운 사람에게 애꿎은 상처를 줄 수 있고, 반대로 안으로 삭는 경우, 마음의 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확실히 그래야만 하는 경우에서조차 감정을 억제하게 되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연인관계라고 생각한다. 연인관계에서는 각자의 생각을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그 간극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결코 견고한 관계로 발전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비단 부정적인 감정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감정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르는 법이다. 행복하다면 정확히 어떤 점 덕분에 행복한지 부끄럼 없이 표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서로의 감정을 숨김없이 공유하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관계의 오랜 지속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김경일 교수는 아이가 진실되게 '어른스럽고',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 부모가 실천해야 하는 육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를 들어 감정의 규모를 1부터 10까지로 나눈다면, 2의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2의 감정을 올바르게 드러내도록 유도를 해 주어라. 만약 아이가 2의 화를 내야 마땅한 상황에서 7의 화를 낸다면, "네가 화를 내는 건 이해하는데, 이렇게 큰 화를 내는 건 잘못한 거야"라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 주어라.'

진정 감정으로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은 무작정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억제하는 이가 아니라, 감정의 본질과 의미, 크기, 근원 등을 바르게 파악하고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연인관계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무엇 때문에 어떻게 행복한지, 불안이 있다면 무엇 때문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현재 자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서로의 마음의 크기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고 그걸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이런 화제를 주저 없이 꺼내고, 논의하고, 사료하는 것이 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관계 형성에 꼭 필요한 수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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