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로 중단됐던 리그가 마침내 재개되었다. 계류장은 전쟁터 직전의 전운처럼 숨 죽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강 위에는 차가운 물안개가 깔려 있었고, 엔진에서 새어 나온 기름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선수들의 긴장을 자극했다.
제비 뽑기 통 앞에는 선수들이 줄을 서 있었다. 누군가는 모자를 벗어 두 손으로 쥐고 기도했고, 누군가는 손끝에 침을 발라 행운을 빌었다. 긴장으로 굳은 표정, 움켜쥔 손목, 메마른 입술, 빠른 숨소리. 농담도 잠시뿐, 공기는 다시 무거워졌다.
한준의 차례가 다가오자 손끝이 떨렸다. 그는 통 안에 손을 넣어 번호표를 꺼냈다. 빠른 순번이었다. 전날 프랙티스에서 확인한 빅배스 포인트로 가장 먼저 들어갈 기회였다. 하지만 기쁨보다는 압박감이 앞섰다. 그의 보트는 남들보다 오래된 중고 모델이었다. 엔진 출력도 낮고 최고 속도도 떨어졌다. 빠른 순번이어도 뒤에서 달려드는 최신형 보트들에게 추월당할 위험이 있었다.
뒤에서 라이벌 선수가 힐끔 보며 말했다.
“그 보트로 선점 가능할까?”
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모자를 깊숙이 눌렀다. “기계가 아니라 내 집중력이 오늘을 결정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스타트 라인에 줄지은 보트들이 하나둘 엔진을 켰다. 최신 보트들의 엔진음은 부드럽고 날카롭게 울렸지만, 그의 보트는 묵직하고 거친 진동을 내뿜었다. 손목으로 전해지는 떨림이 그의 긴장을 더 키웠다. 심판이 플래그를 높이 들자 계류장은 숨을 죽였다. 사이렌이 울리자 수십 척의 보트가 순서대로 튀어나갔다.
한준은 스로틀을 끝까지 밀었다. 그러나 최신형 보트들이 순식간에 앞으로 나가며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물보라가 얼굴을 때렸고, 강의 첫 커브에서 보트가 크게 튀어 오르자 척추를 타고 충격이 전해졌다. 엔진 진동이 발바닥과 가슴까지 울렸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악물고 방향을 유지했다. “포인트를 반드시 선점한다.”
GPS 좌표가 가까워지자 속도를 줄이고 앵커를 내렸다. 첫 포인트 선점 성공. 로드를 꺼내 첫 캐스팅을 했다. 루어가 포물선을 그리며 수면에 떨어졌다.
기대와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짧게 숨을 내쉬고 두 번째 캐스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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