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측장 앞. 바닥은 선수들이 흘린 물로 번들거려 작은 파문이 일었다. 형광등 불빛이 그 위에 반사되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한준은 양손으로 투명한 비닐백을 꽉 움켜쥐고 줄 끝에 섰다. 비닐백 안에서 다섯 마리 배스가 느리게 돌았다. 물이 흔들릴 때마다 형광등 불빛이 일렁였다. 손끝이 저렸다. 심장이 둔탁하게 울렸다. 앞선 선수의 계측이 끝나고 심판이 손짓했다. 한준은 비닐백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한 마리를 꺼냈다. 비늘에서 튄 물방울이 계측판 위로 튀며 작은 소리를 냈다.
심판이 눈금을 읽었다.
“3.12킬로그램.”
숫자가 울리자 계측장은 한순간 정적에 잠겼다. 뒤쪽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43등, 턱걸이야.”
웅성거림. 한준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표정은 단단히 굳었다. 무대 뒤편, 라울이 그림자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Juego de sombras…”(스페인어: 그림자의 게임) 길게. “그림자의 게임은 이제 시작이야.”
라울 옆에서 검은 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그림자에 묻혀 있지만 시선은 날카롭게 박혔다. 한준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앞줄의 아이가 숨을 참았다. 휴대폰 플래시가 번쩍였다.
{이미지 1: 로우 앵글 – 비닐백 속 물결이 흔들리고 배스 실루엣이 보인다]
도시 외곽 창문 없는 방. 테이블 위 호수 지도에 빨간 핀들이 빼곡하다. 시가 연기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호세 가르시아가 시가를 물고 느릿하게 말했다.
“놈은?”
라울은 파일을 펼쳤다.
“턱걸이로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놈입니다.”
카르텔 대표선수가 팔짱을 풀었다.
“포인트(낚시 포인트) 닫는다. 숨 쉴 구멍도 없게.”
호세는 시가 연기를 길게 뿜었다.
“돈은?”
라울은 인보이스(거래명세서)와 송금 내역이 담긴 서류를 펼쳤다.
“Lakeway Holdings(페이퍼컴퍼니). 세 장 인보이스, 건당 9,500달러(약 1,300만 원). 총 28,500달러(약 3,900만 원). 2차는 마리나 정비비로 42,000달러(약 5,700만 원). 현지 유통업체와 건설 하청사를 거쳐 세탁합니다.”
라울이 USB를 노트북에 꽂자 화면에 송금 내역이 떴다. 거래일자, 분할 송금 금액, 계좌명이 세세히 나열됐다. 대표선수가 웃었다.
“이 정도면 은행도 모른다.”
호세는 느릿하게 말했다.
“좋다. 언론은?”
라울은 입꼬리를 올렸다.
“주지사 둘째 아들, 이미 기자들 움직였습니다. 내일 신문 1면입니다. ‘군 출신 문제아’ ‘불명예제대’ 기사로 놈의 멘털부터 흔듭니다.”
구석에서 검은 모자가 걸어 나와 갈색 봉투를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전달 끝.”
봉투 모서리가 라울 손끝에 닿자 방 안 공기가 묵직해졌다. USB 안에는 기자 리스트와 여론조사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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