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위 공기가 바늘처럼 차가웠다. 휴대폰 화면이 꺼지자 호수는 소리의 형태만 남겼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눈 대신 귀. 금속이 아주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 먼 쪽에서 한 번, 가까운 쪽에서 반 박자 늦게 또 한 번. 물결이 보트 선체를 스치며 얇게 찢어지는 소리. 무릎 위 주먹이 천천히 말린다. 투명 비닐백(대회용 배스 보관 백) 안에서 배스가 둥글게 선회한다. 비닐이 달그락거리고, 그 울림이 형광등 잔광을 따라 번져 나간다.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버틴다.
[이미지 1: 시야 하단에 주먹과 레인 글러브의 질감이 보이고, 정면에는 검푸른 수면이 유리처럼 반사된다]
눈을 감으면 사막이 열린다. 모래바람이 입술을 갈라지게 하고, 열기가 총열 끝까지 달군다. 훈련소에서 그는 늘 한 칸 비켜서 있었다. 분대장의 시선이 말해 주었다. ‘외부인.’ 낮은 목소리의 농담, 벽에 적힌 낙서, 줄 맞춰 선 사격장에서 스쳐가는 시선. 그때부터 한준은 방식을 바꿨다. 누구보다 먼저 기상. 누구보다 늦게 점호. 마지막 탄창이 텅 비는 소리를 자기 귀로 확인하기 전까진 사격장을 떠나지 않았다. 야간 전술 교본을 베개 삼아 졸다 깨다, 접어가며 밑줄을 더했다. 한준은 속으로 말했다. “속도 유지, 사주 경계, 실패 없다.” 심장이 리듬을 만들고, 다리는 그 리듬을 증명했다. 전술 평가에서 상관이 고개를 끄덕인 건 딱 두 번이었다. 전투훈장 세 개. 칭찬의 말은 적었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숫자도 배신을 막지는 못했다.
군사재판실의 공기는 차가운 유리 같았다. 판사의 목소리는 균열 하나 내고 들어왔다. “피고는 마약 유통 혐의로 불명예제대…” 사람들의 숨이 어긋나며 방의 밀도가 무거워졌다. 한준의 손목에 수갑이 얹혔다. 차갑다. 군복 단추가 풀리고, 옷이 벗겨지면서 메달들이 차례로 떨어졌다. 바닥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동전 소리와는 다른, 얇고 단단한 울림. 그 소리가 아직도 귓속에서 도는 날이 있다.
[이미지 2: 군사재판 바닥에 떨어진 훈장 두 개 ]
비가 내리던 고향의 묘지. 흙냄새가 목 뒤까지 올라왔다. 아버지의 관이 천천히 내려갈 때, 심장은 흙이 떨어지는 속도와 같은 박자로 뛰었다. 검은 양복들이 묘의 둘레를 감싸고 섰다. 우산과 우산이 부딪혀 맺힌 물방울이 턱, 턱, 떨어졌다. 그는 묘 앞에 무릎을 꿇고 흙 한 줌을 올렸다. 손바닥에 눌린 흙이 열을 먹은 듯 따뜻했다. 외삼촌의 손이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이제 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대답 대신 흙을 더 올려놓았다. 눈도, 손도, 무릎도 젖었다.
재활원은 시계가 느려지는 곳이었다. 의사는 담담했다. “최소 3년은 걸릴 겁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가 시작점이니까.” 첫 달엔 밤마다 시트를 갈아야 했다. 몸은 떨고, 위는 뒤집혔다. 혀끝에 남아도는 술의 유령을 쫓아 물만 마셨다. 윗몸일으키기 때 복근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치료사는 횟수를 세지 않았다. “오늘을 끝냈다는 감각만 남겨요.” 새벽엔 트랙으로 나갔다. 소리 없는 안개가 내려앉은 운동장. 첫 바퀴는 심장을 위로 올리는 시간, 둘째 바퀴는 다리를 설득하는 시간, 셋째 바퀴부터는 핑계를 버리는 시간. 외삼촌은 가끔 담요를 들고 와서,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네가 물 위에 있을 때가 제일 너 같다. 네 아버지 표정이 그랬다.” 그 말이 뼛속까지 들어왔다. 그렇게 3년은 지나갔다. 병원을 나와 처음 낚싯대를 다시 잡았을 때, 손끝을 타고 새 전류가 흘렀다. 이 감각. 이 무게. 살아있다는 신호였으리라!~~
[이미지 3: 불명예제대의 충격으로 술과 마약으로 점철된 그가 다시 살기 위해 새벽 트랙에서 재활하는 모습 원거리에는 외삼촌과 치료사가 작은 점처럼 서 있다]
눈을 뜨면 현재로 돌아온다. 휴대폰의 녹음 메시지는 3초. “뒤를 보지 마.” 목소리는 낯설고, 의도는 명확하다. 그는 짧게 웃는다. “오케이.” 뒤를 보지 않는 게 전술일 때가 있다. 시선은 앞에, 귀는 사방에. 보트 바닥에 놓인 태클박스를 연다. 라이트 지그(가벼운 지그헤드 루어), 크랭크베이트(잠행형 하드베이트), 스피너베이트(블레이드 회전으로 진동+광택) — 세 가지를 가볍게 정렬한다. 스피닝 릴 드랙(릴 브레이크) 세팅을 풀었다. 다시 조인다. 손가락 관절이 ‘딱’하고 잠긴다. 내일은 그가 먼저 걸어 들어갈 것이다. 카르텔이 포인트를 닫으면, 닫힌 문을 쓰면 된다. 진입 각도, 수심 변화, 수몰나무 그림자, 바람 방향. 머릿속 지도가 밝게 겹겹이 뜬다.
물아래가 짧게 웅, 울렸다. 소나도 아니고, 바람도 아닌. 작은 생물의 군집이 지나가는 소리. 이어서, 아주 얇은 금속이 어딘가에 닿는 ‘찡—’ 하는 미세한 공명. 사람의 움직임을 감추려 할 때 나오는 종류의 실수. 그는 여전히 뒤를 보지 않는다. 대신 보트에서 반대편으로 몸의 무게중심을 살짝 옮긴다. 물결이 균형을 되돌려 놓는다. 버티면 보인다. 움직이면 넘어간다. 델타포스에서 배운 생존 공식들. 불명예제대가 그 공식을 지우지는 못했다.
군 시절의 잔상은, 그러나 같은 장면만 재생하지 않는다. 잊고 싶은 것도, 꺼내야 끝나는 것도 있다. 달빛 아래 모래사장, 고글에 박힌 모래, 귀마개 너머로 들리는 들숨의 타이밍. “속도 유지.” “사주.” “복귀 라인.” 상관의 데이터 같은 목소리. 그리고 그 옆에, 스치듯 웃는 얼굴. 그 웃음 끝에서 상자 두 개가 열렸고, 다음 날 포승줄이 닫혔다. 그날 밤 몽유병처럼 뛰어나와 사격장으로 갔다. 사격허가는 이미 내려진 뒤였다. 표적지는 어둠 속에서만 뜯겼다. 탄피는 차갑고, 표적은 뜨거웠다. ‘그래도 배운 건 남는다.’ 한준은 늘 같은 결론으로 돌아왔다. 남는 것을 써서 살아남는 법.
아버지의 장례는 그 결론에 감정의 이유를 붙였다. 삽날이 흙을 퍼 올리는 소리, 관이 내려가는 동안 우산 끝에서 흘러내리던 물줄기. “이제 너만 남았다.” 외삼촌의 말은 명령이 아니었다. 선택지였다. 그는 선택했다. 재활. 금단. 러닝. 낚싯대. 물 위.
[이미지 4: 새벽 보트 출발 전 모습]
“내일.” 입술에 올린 단어는 짧다. 그러나 그 뒤에 붙은 문장이 길다.
‘내가 판을 깐다. 내가 흐름을 바꾼다. 내가 선택한다.’
손가락이 릴 핸들을 공중에서 한 번, 허공 연습하듯 돌린다. 별이 수면에 박혀 있다가 물결에 깨진다. 어디선가 새가 한 번 울고, 그 울음은 금세 사라진다.
멀리서 무전이 들린다. 브리핑은 새벽 5시 30분. 집결은 북쪽 부두. 입수는 6시 정각. 바람은 동북풍 약. 규정은 동일. 라울의 이름이 명단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어쩌면—검은 모자의 그림자도. 그는 머릿속에서 말을 한 번 더 읽는다. “뒤를 보지 마.” 그래, 어떤 싸움은 등 뒤가 아니라 앞에서 끝난다.
물결 하나가 더 일었다. 아주 작은 파형. 이번에는 가까웠다. 그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대로 버틴다. 잠깐의 정적. 파형이 사라지고, 호수는 다시 자신만의 호흡을 찾는다. 내일이면, 그 호흡 위에 그의 리듬이 올라탄다.
전술. 절제. 회복. 결심. 네 단어가 한 박자로 묶인다. 손에 잡힌 로드는 가볍고, 내일의 물은 무겁다.
그 무게를 받아낼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