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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인간 리플리컨트의 선택

혁신의 AI 시대, 인간적 사유의 회복

by Itz토퍼

"이게 최선인가요?"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단 몇 초만 투자해도 누가 작성했는지 금세 짐작할 수 있습니다. AI는 AI를 알아보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인공지능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인 시대는 이미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느냐입니다. 그 방식은 바로 ‘그 결과물에 자신의 사유를 어떻게 녹여냈느냐’입니다.


AI를 악기라고 한다면, 인간의 사유는 연주자에 가깝습니다.


악기는 누구나 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것이 음악이 되는 데에는 연주자의 해석과 감정이 필요합니다. AI가 정보를 가공하고 결과를 출력하는 역할을 한다면, 인간의 사유는 그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같은 악기를 쓴다 해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탄생하듯, 같은 AI를 사용해도 인간의 사유에 따라 창의성, 윤리성, 목적성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분별한 의존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활용입니다.


AI가 내놓은 매끈한 답변을 ‘나의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정말 최선인가?”라고 되물으며 자신의 문장과 관점을 더하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결국 AI가 제공한 데이터(Data)를 자신만의 서사(Narrative)로 소화해 내는 능력이 그 사람의 진정한 실력이 됩니다.

by Gemini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영역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AI가 만든 창작물, 그리고 AI가 작성한 보고서, AI가 생성한 영상을 보며 감탄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효율적 데이터 처리로 해결되는 시대에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사유와 창조성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잃지 않을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 질문을 단순한 테마로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진 세계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영역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기억인지 감정인지 혹은 스스로 설정한 목적성인지, 영화는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영화는 전작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49년, 안개와 비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곳에서 인간과 똑같이 생겼지만 기계로 제조된 존재, 생물학적 인조인간 '리플리컨트'인 주인공 K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이 복제 가능한 세상에서, 결코 복제될 수 없는 나만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K의 여정: 데이터(Data) 속에서 발견한 희망


주인공 K는 복제인간이자, 탈주한 구모델 리플리컨트를 추적하여 제거하는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그는 인간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도록 설계된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수사 도중 충격적인 유골을 발견합니다. 바로 리플리컨트가 스스로 '번식'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증거였습니다.


이 사건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폭발력을 가졌습니다. 리플리컨트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태어난 존재(인간)'와 '제조된 존재(기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K는 조사를 거듭하며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목마'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이 사건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믿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단순히 공장에서 찍어낸 기계가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태어난 '특별한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이때 K에게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소모품이 아닌 '주체적 영혼을 가진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기 위해 나의 경력, 학벌, 과거의 기록들에 매달리곤 합니다. K처럼 우리도 그런 '데이터'들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계와 소통: 서사(Narrative)가 만들어내는 존재의 의미


K의 곁에는 홀로그램 인공지능 연인 '조이'가 있습니다. 그녀는 형체조차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K를 진심으로 아끼고 그에게 '조(Joe)'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K'라는 일련번호가 아닌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된 순간, 그는 무미건조한 데이터의 세계를 벗어나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 존재가 됩니다.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이 타인과 진실하게 연결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K와 조이의 관계는 비록 만들어진 알고리즘의 산물일지라도, 그 안에서 피어난 감정적 유대와 서로를 향한 헌신만큼은 가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정체성이란 홀로 존재하는 정보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반전과 선택: 프로그램된 본능인가, 자발적인 의지인가?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서 잔혹한 진실이 드러납니다. K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기억은 타인의 것을 주입받은 가짜였고, 그는 예언된 특별한 아이가 아닌 대체 가능한 수많은 모델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정체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순간, 영화는 우리에게 가장 빛나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K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혈통이나 제조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희생이다.”


우리는 앞서의 스토리랩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도록 만들어진 아이, '데이비드(영화 A.I.)'를 보았습니다. 데이비드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엄마에게 영원히 사랑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자발적으로 사랑한 존재라기보다, 사랑하도록 ‘설계된’ 존재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K는 다릅니다. 그는 사랑하거나 희생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철저히 복종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그가 시스템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거는 것은 오직 그만의 ‘자발적 의지’입니다. 프로그램을 넘어선 이 숭고한 선택을 통해, K는 특별한 혈통 없이도 영혼을 가진 인간의 모습에 도달합니다.


결론: 당신만의 복제 불가능한 진실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말하듯, 당신을 정의하는 것은 DNA도, 과거의 기록도, AI가 내놓은 데이터도 아닙니다. 이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타인을 위해 흘린 눈물, 대가 없는 친절, 그리고 “이것이 정말 최선인가?”라는 질문 끝에 내리는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AI를 이용해 보고서를 제출한 학생에게 묻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정말 최선인가?” 그 질문 속에 담긴 ‘최선’이란, 인간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사유를 통과하였냐는 것입니다. 과제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AI와 구별되는 나만의 사유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해답입니다.


데이터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방황하거나 혼란스러움을 느끼시나요?

그렇다면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을 증명하는 기적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멀리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오늘 타인을 위해 내미는 작은 손길과, 스스로 써 내려가는 당신만의 서사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 존재란, 세상의 조건과 타인의 기대를 단순히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구성하는 존재입니다. 그 존재에게 삶은 단순한 사건들의 집합이 아니라, 자신이 쓰는 이야기가 곧 존재의 증명이 됩니다."



♣ Blade Runner 2049 • Vangelis, Hans Zimmer & Benjamin Wallfisch


사운드의 철학: 고독의 공명과 웅장한 사유 -


영화의 주제곡과 배경음악은 이러한 K의 고립된 서사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한스 짐머와 벤자민 월피시가 빚어낸 거대하고도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음향은 숨 막히는 미래 도시의 압박감을 소리로 치환합니다. 특히 전작의 음악 감독 반젤리스의 선율을 계승하면서도 한층 더 묵직해진 사운드는, 기계적인 데이터의 세상 속에서 '영혼'을 찾으려 애쓰는 K의 처절한 몸부림과 닮아 있습니다.


주제곡에 담긴 낮게 깔리는 진동과 웅장한 여운은 관객들에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이 듣고 있는 이 소리는 기계의 소음인가요, 아니면 인간의 비명인가요?"


음악은 대사가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을 K의 고독한 사유로 채우며, 관객들이 그의 실존적 고뇌에 깊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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