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기본과 비움, 무얼 추구하고 있나
“항상 같은 스타일이시네요.”
아침 인사를 나누던 지인이 툭 던진 말입니다.
이유인즉, 제 옷차림이 늘 비슷한 스타일인 데다 색상 역시 무채색 단색 위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입는 옷, 특히 티셔츠는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브랜드 역시 유니_로가 절반 이상이고, 나머지는 무인_품과 기타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두 브랜드 제품은 스타일도 비슷하고 색상도 비슷합니다.
저는 사시사철 겉으로나 속으로나 항상 티셔츠를 입습니다. 겨울에도 언더웨어로 티셔츠를 입다 보니 옷장엔 언제나 이들이 대기 중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같은 색상, 같은 스타일의 티셔츠가 최소한 두 장 이상씩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브랜드가 할인 행사를 할 때는 무조건 달려갑니다. 저렴하고 입기 편하며, 나만의 심플한 개성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문득 이런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왜 나는 이 티셔츠들을 이토록 좋아할까?”
그러다 나의 일상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 유니_로(Uniqlo)와 무인_품(MUJI)이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에도 서로 판이한 형이상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유니_로의 철학은 '라이프웨어(LifeWear)'라는 기치 아래,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결점이 없는 '완벽한 기본'을 구축하는 데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티셔츠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최적화된 해답(Solution)인 셈입니다.
반면, 무인_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절제를 통해 브랜드라는 외피는 물론, '기본'이라는 고정된 실체마저 지워버리려 했습니다. 그들에게 티셔츠는 해답이 아니라, 사용자의 삶이 스며들 수 있는 투명한 여백(Emptiness)입니다.
역시 찾아내었습니다. 답은 바로 그것이었군요.
이 흥미로운 대비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근본적인 태도와 맞닿아 있음을 저는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완벽하게 조각해 낼 것인가, 아니면 ‘나’라는 집착을 비워내어 세상과 조화를 이룰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항상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두 브랜드 철학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한번 해석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니_로적 삶: 개별화의 완성(Individualization)과 로고스의 질서
유니_로처럼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심리학적으로 칼 융(Carl Jung)의 '개별화(Individuation)' 과정과 흡사합니다. 개별화란 자아(Ego)가 무의식의 요소들을 통합하여 온전한 '자기(Self)'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유니_로가 가장 이상적인 면사의 굵기와 봉제 방식을 찾아내어 '표준'을 정립하듯, 우리 역시 내면의 혼란을 정리하고 나만의 가치관, 기술, 성격적 완성도를 높여 '완성된 나'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려 애씁니다.
이는 철학적으로 스피노자(Spinoza)의 '코나투스(Conatus)'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 그 역량을 증대시키려는 관성을 가집니다. 유니_로적 삶을 사는 이들은 자기 계발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자신의 실존적 역량을 극대화합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티셔츠가 그 자체로 단단한 존재감을 뿜어내듯, 이들은 세상이라는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완벽한 기본값'이 되기를 열망합니다. 여기서 '기본'은 비루함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모두 쳐낸 뒤 남은 가장 강인한 정수(Essence)가 됩니다.
무인_품적 삶: 자아의 비움(Kenosis)과 무위의 지혜
반대로 무인_품의 태도는 심리학적 개념인 ‘탈중심화(Decentering)’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기보다, 더 큰 전체 속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이름 자체에도 담겨 있습니다. ‘상표에 의존하지 않아도 품질로 인정받는 제품’이라는 의미처럼, 무인_품은 로고를 덜어내고 ‘이름 없는 질(Muji)’을 지향합니다. 이와 같이, 개인 또한 ‘나’라는 강박적인 정체성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다 유연하게 자신을 바라보려는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철학적으로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이나 기독교 신학의 '케노시스(Kenosis, 자기 비움)'와 맥을 같이 합니다. 무인_품의 티셔츠가 입는 사람에 따라 잠옷이 되기도 하고 외출복이 되기도 하는 유연성을 갖는 것처럼, 무인_품적 삶은 고정된 자아상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동양 사상에서 장자(莊子)의 '허실생백(虛室生白)', 즉 '비어 있는 방에 햇빛이 들어와 밝아진다'는 말처럼, 이들은 나를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타인과 세계를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합니다. 여기서 인생은 무언가를 채워 넣는 적층의 과정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망과 아집을 덜어내는 소거의 과정이 됩니다.
실존의 균형: 정답의 추구와 질문의 수용
유니_로적 자세는 우리에게 '탁월함'을 선사하지만, 지나치면 완벽주의라는 감옥에 갇힐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무인_품적 자세는 우리에게 '평온함'을 주지만, 자칫하면 방향성을 잃은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둘의 개성이 너무나 뚜렷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Kierkegaard)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단독자'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전반기에는 유니_로처럼 나만의 단단한 기본과 형식을 갖추기 위해 분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 공들여 만든 그 형식을 무인_품처럼 기꺼이 비워낼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삶이란 유니_로라는 '텍스트'를 정교하게 써 내려가는 행위이자, 동시에 무인_품이라는 '여백'을 통해 그 텍스트에 깊이를 더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에 나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잘 만들어진 티셔츠 깃처럼 빳빳하게 서 있어야 하지만, 가끔은 그저 세상의 바람이 통과하도록 나를 투명하게 열어두어야 합니다.
완벽해지려는 의지와 비워내려는 지혜.
이 상반된 두 갈래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유일무이한 옷을 입고 생(生)이라는 무대를 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티셔츠가 철학과 심리학을 만나다' (하편): '완벽해지고 싶은 나, 사라지고 싶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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