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자루를 든 손끝에 핀, 가장 정직한 생의 훈장
※ 이 글은 "왜 그렇게까지 사느냐"라고 묻는 무심한 세상에게 건네는 고요한 답신입니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한밤의 공기는 어김없이 차가워집니다. 그 싸늘함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 즈음이면, 손에 쥔 빗자루의 무게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서서히 삶의 무게로 바뀌어 갑니다. 타국에서의 생활도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온기가 채 돌지 않는 신축 아파트의 적막한 내부는 여전히 낯선 경계처럼 느껴집니다.
그 어스름한 공간으로 들어서며, 인테리어 작업이 남기고 간 거친 파편들과 어둠의 잔해들을 쓸어내고 닦아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빛나는 시작을 위해 나의 고단함을 기꺼이 지불하는 나만의 엄숙한 의례라고나 할까요.
그것은 바로, '고단한 존엄'입니다.
내가 믿는 존엄은 안락한 소파나 높은 직함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삶의 진실 앞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는 정직함'에서 싹을 틔웁니다. 체력의 한계가 발끝부터 차올라 숨이 턱 끝까지 가빠오는 순간에도, 땀방울이 흘러내려 내 흐린 눈망울로 다시금 돌아오려 할지라도, 내가 지켜야 할 일터와 내 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위해 그 자리를 묵묵히 견뎌냅니다.
삶의 비루함을 기교로 회피하지 않고 온몸의 무게로 받아낼 때, 비로소 살아있는 '현장형 존엄'이 태어납니다. 청소를 위해 두 팔을 휘두를 때마다 욱신거리는 팔의 근육통은, 내가 오늘 하루도 삶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도망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가장 정직한 훈장이 아닐까요.
또한, 이 고단함은 '사랑의 실천적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는 성스러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딸 보배단지의 삶을 위해 기꺼이 든든한 그루터기가 되어주고, 자신은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와 노동이라는 성스러운 땀방울을 흘리는 일. 이것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을 넘어선 존재의 숭고한 증명입니다. 내게 아직 누군가를 이토록 깊이 사랑할 능력이 남아있음을, 그리고 그 사랑을 끝까지 책임질 힘이 내 육신에 깃들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고단함은 '초라함'이라는 그늘을 벗어나 '긍지'라는 햇살로 나아갑니다. 누군가를 위해 여전히 나를 소모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오직 사랑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특권이 아닐까요.
어린 시절 아버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고되면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편해지려 하면 몸이 고달파지는 법이라고. 나는 이 육체적 고단함을 자양분 삼아 작가로서의 정신적 유희를 이어갑니다. 욱신거리는 허리의 통증을 훈장처럼 느끼며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칠 때, '몸의 노동'과 '정신의 유희'는 비로소 하나의 호흡으로 만납니다.
이른 새벽, 서재를 채웠던 깊은 어둠을 밀어내는 향긋한 커피 향 속에서 나의 삶은 다시금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고단한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삶의 감각들은 이제 문장이 되어, 하얀 공백 위를 어린아이의 발걸음처럼 꼬물거리며 채워나갑니다.
이 불굴의 균형이야말로, 한 시대의 석양에 저물어가는 ‘노인’이 아닌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결국 '고단한 존엄'은 세상에 던지는 나의 어제와 오늘의 선언입니다.
"내 삶이 아무리 팍팍하고 고달플지라도, 나는 여전히 내가 선택한 가치를 위해 나를 소모할 권리가 있다"는 뜨거운 외침입니다. 나는 방관하는 낙천적인 태도 대신, 책임 있는 완숙함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그 모습이 타인의 눈에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비록 세월의 무게에 내 몸이 조금씩 깎여나갈지라도.
오늘도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거친 숨을 고르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갈라진 손마디와 무거운 어깨는 당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존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고단함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를 증명하며, 그 고통스러운 아름다움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품격을 완성해 나가고 있답니다.
오늘 하루도,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역시.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