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 #04

책임감 있는 소비자가 되고 싶었다

by The Lazy Lab

요즘 다들 가성비템을 찾는다. 나도 그렇다.

할인, 세일, 특가.

이 단어들 앞에서 나도 몇 번이고 흔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책임감 있는 소비자가 되고 싶었다.
가치소비, 윤리소비, 공정무역.
수업에서 배웠고, 영상으로 봤고, 실천도 해보고 싶다.
그래서인지 싼값의 물건을 마주하면 한 번씩 주춤하게 된다.


이 가격으로 이 물건이 내 앞에 오기까지, 도대체 몇 단계를 거쳤을까?
이 가격으로 팔린다면, 그 중간 과정에 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를 받고 일한 걸까?
어떻게 이렇게 싸게 내가 살 수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멈출 수 없다.


혹시 아직 본 적 없는 레이지가 있다면,

《The Story of Stuff》영상을 꼭 추천한다.
나도 고등학교 때 억지로 숙제로 봤는데, 그 후로는 잊혀지지 않는 영상이 되었다.


대학교에 와서는 ‘마케팅 사회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가치소비에 대해 다시 한 번 배우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했던 한 달짜리 실천 과제가 자꾸 떠올랐다.


그 과제의 내용은 이랬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재료 하나를 정해서, 그걸 한 달 동안 책임감 있게 소비해보세요.”


나는 당연히 초콜릿을 골랐다.
초코칩 쿠키, 브라우니, 초코우유—초콜릿은 내게 거의 생존 필수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한 달 동안은 이걸 아무 데서나, 아무거나 살 수 없었다.
Fair Trade 마크가 붙어있는 초콜릿만 먹기.
심지어 아이스크림 가게를 갈 때도, 디저트 가게를 방문할 때도,
편의점에서 초코우유를 고를 때조차,
사용된 초콜릿의 출처를 확인해야 했다.
어디서 온 초콜릿인가요? 공정무역 제품인가요?
직접 묻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소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이제 Fair Trade 제품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지만,
내가 그 과제를 했던 건 캐나다에서였다.
그곳에서는 이미 10년, 20년 전부터 학교 수업에서 이런 주제를 가르치고,
학생들이 실제로 실천해보도록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혹시 Fair Trade가 낯선 레이지들을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Fair는 ‘공정’, Trade는 ‘무역’.
공정무역.
말 그대로,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구조의 유통 시스템이다.


초콜릿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쉬워진다.


초콜릿은 ‘카카오 열매’에서 시작된다.
농장에서 재배하고, 말리고, 로스팅하고, 분쇄하고, 설탕을 넣고, 각종 첨가물을 더하면
우리가 아는 그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 초콜릿 바 하나를 우리는 마트에서 3천 원에서 5천 원 사이에 구매한다.

마트는 마트대로 이윤을 남기고 있을 테니, 우리가 사 먹는 5천 원짜리 초콜릿은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싼 가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가장 처음 카카오 열매를 따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를 받고 이 고된 일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받는 돈은 정말 ‘최저’라는 말조차 미안할 만큼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타벅스도 한때 커피 원두의 유통 과정에서
아동 노동 착취 의혹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법적으로 입증된 사례는 아니었지만,
여러 국제 기구와 언론이 자료를 내놓으며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더 최근에는 크리스찬 디올이 유사한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명품 브랜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가치소비는 브랜드의 이름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가져오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초콜릿도 마찬가지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이 단 한 입에,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노동과 손길이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가볍게 소비하는 게 쉬워지지 않는다.


물론, 실천은 어렵다.
공정무역 제품은 보통 8~10배 정도 더 비싸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내 소비 기준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 한 주, 혹은 단 하루라도 시도해보면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도 관심 있는 주제로 열정을 담다 보니
실험 기록이 또 길어졌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 책임감 있는 소비를 토대로
내가 어떤 기획을 상상하게 되었는지,
어떤 마케팅 실험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이어서 기록해보겠다.


모든 레이지들이 현명한 소비자가 되길 바라며,
LAB #04의 실험을 여기서 마친다.




PS.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리는 가성비보다,
적당한 가격에 담긴 존중의 가치를 한번쯤은 고민해보자.
실천은 어렵지만, 의식은 분명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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