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는 차고 넘쳤지
회사를 설립한 후 지인의 소개로 회계사를 만났다. 학생비자인 그보다 내가 대표직을 맡는 게 자금 대출에 유리하다는 그의 권유에 따라, 대표직은 내 이름으로 넘어왔다.
회계 정산일, 회계사를 직접 뵙게 되었다.
“그때 말씀드린 인출 건은 남편분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컴퓨터 샀을 때라고 하던데요…”
“하하, 그래요? 사실 형님이 클레어 씨를 처제 같다고 칭찬을 많이 하셨거든요. 저도 형님 마음과 같은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솔직하게… 늦지 않았습니다.
그분, 거짓말하고 계십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머리가 하얘졌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지인들이 전해준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무엇보다도 그 지출 내역이 문제였다.
“이건 뭐야? 회계사님이 웃으시던데 정말 그게 맞아?”
“아 맞다니까. 괜히 의심 좀 하지 마. 내가 쓴 게 뭐 있겠냐고!”
하지만 지출 내역에는 다른 건들 과 다르게 단 한 줄, ‘enterprise – $800’ 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었다. 회계사님이 직접 전화를 할 만큼 의심스러운 금액이었다. 그 문제로 우리는 언성을 높였고, 그는 화만 내며 약속이 있다며 나가버렸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복통이 찾아왔다.
다음날, 정밀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화면을 들여다보던 의료진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웠다. 여러 번 확인한 후 돌아온 말.
“죄송합니다. 아기가 심장이 뛰지 않네요.”
아기가 찾아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 죄였던 걸까?
아니면 내가 어제 그 사람과 싸우면서 신경을 너무 쓴 탓일까…
다리에 힘이 빠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그에게 짧게 전했다.
아이는 그렇게 떠났다.
그 하루는 그 아기에게 미안함에 목놓아 울었다.
그런데 내 슬픔을 위로할 틈도 없이, 그는 전화를 받더니 말했다.
“위로주 한잔 사주시겠다는데, 나갔다 와도 되지?”
그랬다.
유산을 10주 차 이전에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가 심장이 멈춘 후에도 아기는 여전히 뱃속에 있다. 약을 받아 집에서 스스로 처리해야 하고, 그 과정은 밤새 고통 속에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술을 마시러 나가도 되냐고 당당히 물어보았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
고맙다 아가야… 이제야 상황 판단이 되는 것 같다.
네가 나를 살렸구나. 고맙고, 미안하다.
그는 요즘 정육점 사장이라는 사람과 주 5일을 붙어 지냈다. 사장님이 하지 않는 접대를 대신한다며 늘 그를 쫓아다녔다. 내 옆에서는 딱 3일만 지극정성. 그 이상은 없었다.
나는 친구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내 말 안 들을 거면서 왜 자꾸 상담하냐 했지?”
나는 은연중에 시계를 봤다.
“9시…. 나 아무래도 가봐야겠어.”
노래방.
늘 술만 마시면 향했던 곳.
향수 냄새와 볼에 반짝이가 묻어 있던 곳.
슈퍼에서 마주쳤던 그 여자도, 그 슈퍼 바로 옆 노래방에 있었다.
모든 것이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벤치에 앉아 뛰어대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뒷길 흡연구역으로 들어가 숨죽이며 지켜보던 순간, 정육점 사장이 한 아가씨와 함께 나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서 뵙네요.”
“아… 예..”
“OO 오빠랑 같이 오셨죠? 오빠 어디에 있어요?”
사장님 옆에 있던 아가씨가 말했다.
“아, 같이 오신 분 찾으시나 봐요? 저희 4번 방에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저 인사만 하고 올게요~”
뚜벅뚜벅뚜벅.
팍—!!!
문을 열어젖혔다. 젊디 젊은, 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와 나란히 앉아 심취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가 있었다. 미친놈…
“안녕? 여기서 뭐 해?”
노래에 취한 그의 얼굴은 경찰 급습이라도 당한 듯 놀란 표정이었다. 나는 속이 타 술잔을 집어 들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 옆 아가씨가 그에게 물었다.
“누구야?”
“아… 인사해. 내 와이프야!”
그 아가씨는 얼굴이 빨개지며 급히 얼굴을 가렸다.
넌 또, 네가 뭐라도 되는 양 창피하게 나를 소개하니…
“그만하지? 당장 따라 나와!”
그 순간, 사장과 그의 파트너 아가씨가 들어왔고, 사장은 태연히 말했다.
“벌써 가게? 노래 한 곡 하고 가야지?”
뭔… 개소리야!!!
그렇게, 시트콤 같으면서도 막장드라마 같은 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