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끝에서 터져버린 외침
“지금 제정신이야!? 돌았어!? 그동안 이러고 있었던 거야?”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담배만 연거푸 피워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며 집으로 냅다 향했다. 세상에, 저렇게 발걸음이 빠를 수 있나 싶었다. 돌아오는 길,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의 거짓말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게이지가 폭발 직전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걸 쏟아냈다. 고함, 욕설, 잔소리. 둘만의 의미가 담겼던 물건들까지 내다 던졌다. 괴물처럼 울부짖는 나를, 스스로도 낯설게 느꼈다. 그러던 중 식탁 위에 놓인 카드 명세서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씩 펼쳐보니 ‘enterprise’라는 곳에서 긁은 기록이 열 건이 넘었다.
“아니, 여자가 그렇게 좋아?”
그는 태연했다.
“거기 가는 게 어때서? 손을 잡았냐, 껴안길 했냐. 그냥 옆에서 술 따르고 얘기만 하는 거지. 우리 아빠랑도 같이 갈 정도라니까. 정말 아무 일 없다니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아빠랑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 순간 선포했다.
“더는 못 참아. 내일부터 짐 싸서 나가. 아니, 내가 직접 싸줄게.”
그날 밤, 나는 그의 옷가지를 캐리어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결혼식장을 취소했다.
법무사에게는 비자 취소 의사를 전했고, 부동산에도 이사 나가겠다고 알렸다.
이곳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이러는 건 아닌 거 같아,
어떻게 이렇게 쉽게 헤어지잔 말을 하는 거야?”
대화의 끝은 늘 같았다.
“넌 몰라서 그래. 사회생활 안 해봤잖아. 이해 못 하는 네가 이상한 거야.”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
나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제발 나가 달라고만 했다. 결국 모든 가구와 가전을 팔아버렸다.
지긋지긋한 이곳에서는 한시도 있고 싶지 않았다.
정리를 시작하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는 중
아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누나, 형 귀 수술받았데요 “
아, 늘 아프다던 귀가 드디어 사달이 났구나.
곧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 나 아파.
사진이 함께 왔다. 붕대와 부은 얼굴.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미련한 등신인 나는 답했다.
— 밥은 먹었어?
그 한마디는 곧 용서의 신호였다.
그는 몇 분 후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번에 진짜 많이 생각했어. 잘할게. 실망 안 시킬게. 딱 한 번만 다시 믿어줘.”
몰골은 참혹했다. 한쪽 귀는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고 얼굴은 부어올라 있었다. 그 모습으로 찾아올 만큼 마음이 급했던 걸까.
결국 나는 또 바보였다.
아니, 바보보다 더한 바보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그를 믿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