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일본에서 건너온 투박한 초록색 비누 하나.
요즘 세상에 비누라니, 처음엔 의아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 비누는
'근면과 휴식 사이'에 놓인 물건이라 한다.
고된 노동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손에 쥐는 도구,
비로소 숨을 고르게 하는 안식의 신호.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일본이 아닌 어릴 적 고향 우물가로 돌아갔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내 양말을 문지르던 누나의 뒷모습.
손마디가 불어 터지도록 묵묵히 하루를 헹궈내던
그 고요하고 정직했던 시간들.
일본의 ‘생활’이 담겼다는 그 철학이
나에게는 ‘누나의 등’으로 읽혔다.
차마 닳게 할 수 없어 장식장 위에 올려두었다.
쓰지 않아도 가끔씩 배어 나오는 향기.
거기 놓인 건 비누가 아니라,
누군가의 수고 뒤에 남은
가장 따뜻한 휴식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