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눈 오는 날의 온기
눈이 왔다.
눈이라고 부르기엔 금세 비로 변해버리는, 바닥이 묵직하게 젖은 그런 날이었다. 길은 미끄러웠고, 동네는 조금 느려졌다.
이모가 운영하는 작은 죽집이 있다.
오늘은 손이 모자랐다. 주민들이 몰렸고, 배달이 밀렸다.
“미안한데, 급한 데 하나만 좀.”
머리에 눈이 젖는 날엔 사진 찍는 사람도 없다.
셔터도 쉬는 날이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매장 안은 이미 따뜻했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 김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냄새.
이상하게도 한국의 죽은 배보다 마음을 먼저 채운다.
죽 하나를 받아 들고 무실동으로 향했다.
고객 요청 사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화 주세요. 나가 있을게요.”
10분 주차 허용 구역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걸었다.
멀리서 매장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이런 건 바로 안다.
아, 저 사람이겠구나.
“여기예요.”
죽을 건네고 돌아서려는 순간,
“잠깐만요.”
손바닥에 파란색 캔 하나가 얹혔다.
알루미늄을 통해 바로 전해지는 뜨거운 감각.
따뜻한 캔커피였다.
그 커피는 바로 마시지 않았다.
아마 그분도 집에 돌아가 코트를 벗고, 신발을 정리하고,
숟가락을 꺼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죽을 바로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사이,
죽은 더 부드러워지고
마음은 조금 느슨해졌을 테니까.
창밖에는 다시 눈이 섞여 내리고 있었다.
곧 봄이 오겠지.
그래도 이런 날 하나쯤은,
계절이 조금 늦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