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영화 '다시, 서울에서'Made in Korea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으로 이동할 뿐이다

by 마루


비행기 안에서,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순간이 있다.
몸은 여전히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감정은 이미 어느 장소의 공기를 먼저 들이마시고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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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에게 서울은 그런 도시였다.
처음 가는 곳이 아니라, 오래전에 한 번 다녀온 곳처럼 느껴지는 장소.
기억은 없는데 익숙함만 남아 있는 공간.


그 시작에는 한 문장이 있었다.


허황옥.
바다를 건너온 한 사람.


그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를 묻지 않게 만드는 힘.
샘바는 그 문장을 따라 자신의 삶을 정렬해 왔다.


그래서 서울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처럼 보였다.
자신이 결국 도착해야 할 자리처럼.


하지만 도시는 그런 믿음을 지지해주지 않는다.


사람은 관계가 아니라 구조를 믿을 때 무너진다.
샘바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의 흐름이었다.


인도에서 시작해 한국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그 구조 안에서 사랑까지 완성하려 했던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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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깨진다.


배신은 그래서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건 서사의 붕괴다.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 앞에서
샘바는 처음으로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춤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감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다.
지하철은 늘 같은 시간에 도착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않은 채 지나간다.


그 흐름 속에서
샘바는 점점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방인이라는 감각은
크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용하게 스며든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
눈을 마주칠 사람이 없을 때,
아무도 자신의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는다.


그 감정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다.
그저 비어 있다.


이상하게도
그 비어 있음이 쌓이면서
샘바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인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견디고 있는 존재로.


그날, 박물관에서.


어두운 조명 아래
작은 단검 하나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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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았다.


이 땅의 것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낯설고,
낯선 것이라고 하기엔 이상하게 익숙한 형태.


설명문이 옆에 붙어 있었지만
샘바는 읽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한 것이 아니라 느껴버린 것이었다.


연못 위에 부서지던 빛,
말하지 못한 감정,
그리고 누군가가 끝내 가져가지 못한 마음.


그 단검은 물건이 아니라
어딘가에 남겨진 감정의 흔적이었다.


천 년 전.


왕은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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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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