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선 (線)

강민준

by 마루


선 (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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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은 더 느리게 걷는다.
강민준은 그걸 알고 있었다.


우산을 쓴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우산이 없는 사람은 뛴다.


중간은 없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의 군중은 두 종류로만 나뉜다.
체념한 사람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


오늘 그가 추적하는 남자는 체념한 쪽이었다.


태그 번호 K-0039.
40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18분 전 합정동 골목에서 포착됐다.


민준은 차 안에서 화면을 내려다봤다.
지도 위에 점 하나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점.


그는 항상 그게 불편했다.


팀장은 말했다.
위치를 잡으면 된다, 좌표가 전부다.


하지만 민준은 다르게 생각했다.


점은 지금 이 사람이 어디 있는지만 알려줄 뿐이다.
왜 거기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중요한 건 선이다.


이 사람이 지난 72시간 동안 어디를 지나왔는지.
누구와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었는지.


그 궤적을 이으면 — 선이 된다.
그리고 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민준은 시동을 걸었다.


2.


K-0039가 편의점에 들어갔다.


민준은 50미터 뒤에서 차를 세웠다.
태그 신호가 고정됐다.


2분.
3분.


그는 72시간 궤적을 떠올렸다.


이 남자는 같은 편의점을 이미 두 번 들렀다.
월요일 오전, 수요일 오후.
두 번 다 15분 이상 머물렀다.


편의점에서 15분은 길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
아니면 감시당하는 걸 알고 있거나.


차 안 공기가 갑자기 좁아졌다.
숨을 쉬고 있는데도, 누군가 대신 숨을 세고 있는 느낌이었다.


민준은 백미러를 봤다.
빗속에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기술이다.
그는 그 기술을 쓰는 사람이었으므로.


편의점 유리문이 열리고 K-0039가 나왔다.
우산이 없었다.


비를 맞으며 걷는 남자의 등을 보면서
민준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이미 뭔가를 포기했다.
그게 뭔지 알아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 민준은 알아챘다.


남자의 손에 편의점 봉투가 없었다.
15분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이건 도주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선택된 경로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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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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