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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나에게 연락한 전 남자친구

절대로 연락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by 나원

헤어질 때 가장 매정했으며 마지막 순간, 내가 유일하게 이별 통보를 받고 매달렸음에도 그대로 그렇게 끝났던 연애였다.



20대 중반의 내 연애에서 그를 빼놓을 수는 없다. 5년 전의 나는 여대생, 그는 4살 연상의 직장인이었다.



그는 전 연인을 많이 사랑했다고 한다. 전 연인은 매정하게 그를 떠났다고 했다. 그와의 연애를 시작하기 전, 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던 그의 모습을 처음으로 봤던 나는 그와 연애를 하는 내내 그녀를 의식했다. 묘한 경쟁 심리, 과거의 그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날 더 사랑해줬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은 늘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결국 그런 나의 마음은 이별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마음을 시험하려고 먼저 이별을 말한 어렸던 나를, 그는 잡지 않았다. 이후 나는 다시 그에게 매달렸지만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흔한 20대 청춘이 그러하듯 다른 사람과 연애도 했고, 그는 그렇게 이따금씩 추억 속에서 회상하게 되는 존재로 남게 되었다.




어느 날, 야밤에 별생각 없이 오래전 이용했던 SNS 계정에 로그인하니 그에게서 온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나의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해 준 것부터, 내 소식을 계속해서 묻는 내용이었다. 그 메시지에 조심스레 답을 보냈더니 수 시간 내에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안부를 주고받다가 5년 전, 우리가 연애를 하기 전처럼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나는 그에게 오래 연락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와 며칠간 메시지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나 이후에는 연애를 하지 않았고 5년간 항상 그리던 건 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연락하며 아쉬움과 미련이 가득한 대상은 그녀가 아니라 나라고 한다. 묘한 안도감, 그리고 이제야 그녀를 진짜로 이겼다는 생각. 하지만 그 생각 끝에 종착점은 ‘이겼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였다.



그는 그땐 자신도 어렸던 것 같다며 내가 어떻게 컸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고 했다. 나를 부를 때, 더 이상 연애할 때처럼 “자기야”라는 달달한 애칭은 아니었지만, 그가 “일부러 많이 불러주고 있다”는 내 이름 두 글자에서 고스란히 그의 애정이 느껴졌다.




아마 시간이 지나고 그에게서 그녀가 아닌 내가 떠오른 이유는,

"너만큼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사람이 없었다"는 그의 말에 비추어 보아

30대를 맞이하고 이후에 삶의 무게를 느끼며 외로운 순간, 있는 그대로의 그를 진심을 다해 사랑해준 사람 그러니까 사랑에서 오는 따뜻함이 그리웠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그때의 나는 그를 마지막까지 붙잡으려 했으니까.



그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이어가던 날, 나는 “오빠, 나 울 것 같아. 오빠도 그래?”하고 물었다. 그는 “나는 비밀이야”라고 답했다. 분명 울었을 것이다. 그는 나랑 만날 때도 나보다 훨씬 잘 울었다. 이별의 날에도 나는 끝까지 그의 앞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그는 내 앞에서 울었으니.



지금의 나는 그의 나이가 되었고,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의 그런 문제들로 인해 이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듯했다. 그 스스로도 말하기를, 자신의 성향은 스스로 짐을 짊어지려 하고 희생하려 한다고 했다. 때문에 나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또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가 나에게 의지하기보다 모든 것을 혼자 떠안으려는 모습 또한 내심 서운해하곤 했다.



지금의 우리가 다시 만나더라도 그는 여전히 그럴 것이다.




5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는 여전히 나를 적극적으로 붙잡지는 않았다.

더 성장한 그는 나를 붙잡는 대신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고, 지금 나의 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애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5년 전에 나에게 했던 “내가 널 좋아하니까, 우리 만나자”라는 말을 현재의 나에게 다시 할 수 없을 만큼의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야 알게 된 것들이 많았고, 이제라면 알 수 있었을 것 같은 게 참 많았다.

이런 것들이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게 싫었지만


다만 평생을 알지 못할 뻔했던 것들을 이제서라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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