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우리를 배신할 때
1장.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안갯속에서 정밀 지도를 펼쳐 든 사람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마디로 ‘짙은 안갯속’을 운전하는 것과 같다. 헤드라이트를 켜도 당장 몇 미터 앞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대를 뷰카(VUCA) 시대라고 부른다.
문제는 우리가 이 안갯속을 운전하면서, 1년 전 맑은 날에 위성으로 찍은 초정밀 지도를 내비게이션 삼아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계획 오류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비합리성을 설명했다. 이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예측할 때, 과거의 경험이나 잠재적 변수를 무시하고 늘 긍정적으로만 예상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번 주말까지 이 책을 다 읽어야지.’ 당신은 책의 두께와 자신의 독서 속도를 고려해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 계획에는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 밀린 집안일,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던 책의 내용, 그리고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번아웃 모멘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결국 주말이 끝날 때, 책상 위에 반쯤 읽다 만 책을 보며 생각한다. ‘역시 난 안돼.’
이것이 바로 ‘계획 오류’의 함정이다. 결국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자책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만드는 심리적 족쇄가 된다.
2장.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감옥: '시작'을 가로막는 가장 높은 벽
통제에 대한 집착은 종종 ‘완벽주의’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감옥을 짓는다. 완벽주의는 성취를 향한 건강한 동기가 아니라, 실패에 대한 깊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방어기제에 가깝다. 완벽주의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더 나은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받지 않을 결과’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소진시킨다.
완벽주의자에게 시작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벽이다. 그들은 머릿속에 있는 완벽한 최종 결과물과 지금 당장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초라한 첫 결과물 사이의 엄청난 격차를 견디지 못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thing)의 사고방식이다. 100점이 아니면 0점과 같다고 여기기에, 10점, 20점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설령 시작의 벽을 넘어섰다 해도, 그 앞에는 ‘번아웃’이라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완벽주의적 성향은 우울, 불안, 스트레스와도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자신의 무능함과 나태함의 증거로 해석하고, 끝없는 자책의 늪에 빠진다.
완벽주의의 감옥 문을 열고 나오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완벽한 결과가 아닌 괜찮은 시도를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것은 대충살아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허투루’ 시도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