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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윤리, 기술이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 약속

3부, AI 시대, 세상의 판이 바뀐다.

by 신피질

AI는 이제 산업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언어를 이해하고, 예술을 창조하며, 생명을 진단하는 기술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혁신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바로 윤리(Ethics)다.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 질서와 인간 권리를 결정짓는 새로운 제도다. 따라서 AI 윤리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 조건이 되었다.

2020년, 구글의 인공지능 윤리팀 공동책임자 팀닛 게브루(Timnit Gebru)는 대형 언어모델의 편향과 환경적 위험을 다룬 논문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녀의 동료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도 같은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2023년에는 오픈 AI(OpenAI) 내부에서도 윤리를 둘러싼 갈등이 드러났다. CEO 샘 올트먼의 전격 해임과 복귀, 그리고 핵심 연구진의 연이은 퇴사. 그 중심에는 “AI의 안전보다 상업화를 중요시 하는 기업의 속성이 드러났다. AI의 방향이 연구자에서 자본으로 옮겨가며, 인간의 가치보다 투자 수익이 더 중요시 되었다.

윤리적 제동이 사라진 AI는 인간의 사회 질서를 통채로 흔들 수 있다. 딥페이크와 조작 콘텐츠는 진실의 경계를 허물고, AI 기반의 여론 조작은 민주주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데이터를 가진 소수의 기술기업은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AI에 종속된 다수는 새로운 권력 구조 아래에 놓인다.

감시 기술이 일상화되면 인간의 행동은 데이터화로 규제된다. 얼굴 인식과 감정 분석은 편의를 주지만, 그 끝에는 통제와 침묵이 자리한다. 전쟁터에서는 자율살상무기가 판단을 대신하고, 법정에서는 알고리즘이 판결을 보조하며, 결국 “책임의 주체”라는 인간의 특권은 사라진다.


만약 AI가 윤리나 규제가 없고, 전적으로 자율에 맡겨진다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대기업의 인사 시스템은 이제 완전히 AI가 주도한다. 면접관은 사라지고, 지원자의 이력서와 표정을 분석한 AI가 “조직 적합도 점수”를 매긴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지원자가 이의를 제기한다. “저는 왜 탈락했습니까?”
데이터가 흑인, 여성, 장애인, 지방대 출신을 불리하게 학습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AI 의료 진단 시스템은 병원 내에서 인간보다 빠르고 저렴하다. 의사는 결과를 확인만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피부암 환자 수백 명이 AI의 오진으로 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데이터가 서구인의 피부색을 중심으로 학습되어 동양인의 증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거를 앞둔 어느 날, 유력 후보가 눈물을 흘리며 범죄를 자백하는 영상이 SNS를 뒤덮는다.
실시간으로 확산된 그 영상은 단 하루 만에 수백만 명의 표심을 바꿔놓는다. 다음 날, 그것이 AI가 만든 조작 영상임이 밝혀지지만 이미 여론은 되돌릴 수 없다.


도시 전체가 스마트 카메라로 연결된 ‘안전 도시’가 운영된다. 범죄율은 줄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웃지도, 손을 흔들지도 않는다. AI 감시 시스템이 감정의 변화를 ‘위험 신호’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표정”을 지은 시민은 자동으로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다. 보안은 강화되었지만, 자유는 데이터 속에서 사라졌다.


전쟁터의 하늘 위, 드론 수백 대가 인간의 개입 없이 작동한다. 목표 탐지, 공격, 사후 판단까지 AI가 전담한다. 하지만 시스템 오류 한 번으로 민간 마을이 폭격당한다. “그건 버그였습니다.”전쟁의 책임이 사라진 시대, 누구도 죽음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뉴스 편집국은 더 이상 기자를 고용하지 않는다. AI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문장을 만들어낸다. 속도는 인간보다 100배 빠르다. 하지만 기사마다 미묘한 방향이 다르다. AI가 광고주가 선호하는 가치관에 맞게 뉴스를 ‘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니라 코드에 길든 알고리즘이 된다.


AI 튜터는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완벽히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학생들은 모두 높은 점수를 받지만, 생각의 방향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AI가 “효율적”이라 판단한 사고 패턴만 남고 엉뚱한 질문, 비논리적 상상력은 사라진다. 편리함 속에서 다양성이 죽어간다.


이 위협을 감지한 세계는 기술의 속도보다 인간의 기준을 먼저 세우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EU AI Act」를 통과시켜 AI를 위험 등급별로 규제하는 세계 최초의 법체계를 만들었다. 금지·고위험·제한적 위험·최소 위험의 네 단계로 나뉜다.

금지 영역에는 사회 신용평가, 무단 감시, 인간 조작형 AI가 포함되고, 고위험 분야로는 의료·금융·사법·채용 등 인간의 생명과 권리에 직접 영향을 주는 영역이 지정되었다. 이 법은 단순한 제재가 아니라 신뢰의 기술적 조건을 명문화한다. 데이터 품질, 투명성, 인간 감독, 설명 가능성, 그리고 책임성이 그것이다.
EU는 이를 위반한 기업에 전 세계 매출의 7% 또는 3천5백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기술보다 인간의 권리를 우선하는, 말 그대로 디지털 헌법이다.

미국은 법제보다는 자율 규제에 초점을 맞춘다. 백악관의 AI 권리장전(AI Bill of Rights)과 NIST의 AI 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국가 통제 중심의 접근으로, AI 콘텐츠 검열과 데이터 이동 제한을 강화했다. 각국의 철학은 다르지만, 모두 “신뢰할 수 있는 AI”라는 공통 목표를 향하고 있다.

한국도 2025년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했다.
2026년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AI를 산업 성장의 핵심으로 육성하면서 동시에 신뢰의 원칙을 법제화한다.
법은 사람의 생명과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을 ‘고영향 인공지능’으로 정의하고, 데이터의 품질과 설명 가능성, 인간 감독 체계를 의무화했다. 또한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물에는 “AI가 생성한 것임”을 명시해야 한다. 이는 정보의 출처를 투명하게 하고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하려는 조치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해 정책 심의와 감독을 수행하고, 사업자에게는 시정 명령, 과태료, 중지 명령 등 실질적 제재 수단을 부여했다. 한국 역시 이제 AI 윤리를 법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셈이다.

기업이 윤리를 꺼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윤리는 속도를 늦추고, 비용을 늘리며, 책임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윤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 기술은 누구를 배제하는가?”,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보는가?”, “AI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은 기업의 이익 구조를 흔든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윤리위원회를 만들지만 그 위원회는 결정권이 없는 상징에 그친다.

AI 윤리를 무시한 기술은 부실공사와 다르지 않다. 처음엔 더 빨리 완성되고, 겉보기엔 완벽하지만 내부에는 신뢰를 지탱할 구조가 없다. 데이터의 편향, 프라이버시 침해, 책임 회피 — 이 모든 문제는 윤리의 철근이 빠진 건축물에서 비롯된다. AI 윤리는 규제가 아니라 약속이다. 기술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그 약속이 깨지면 우리는 스스로 만든 문명에 의해 배신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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