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배우는 사람들은 누구나,
정석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을 꿈꿉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세, 즉 효율적인 움직임을 익히기 위해 반복적인 훈련을 합니다.
그 반복은,
대부분의 경우 땀을 흘리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육체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우리는 그 동작을 스스로에게 새겨 넣습니다.
그리고 많은 코치들이, 훈련이 어느 지점에 다다랐을 때 이렇게 말하죠.
“이제부터는 몸이 기억하는 시간이야.”
그 말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가 반복을 통해 도달하는 목표는 우리 몸이 스스로 기억하고, 채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한에 닿는 순간, 우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우리 존재의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때는 더 이상 과거도, 미래도, 돈이나 고민 같은 것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라는 존재와, 이 순간만이 남습니다.
운동을 하며 힘이들 때,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합니다.
그 순간에는 ‘사고’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극한의 순간에도
“힘들다.”
“끝났으면 좋겠다.” 와 같은 사고에 빠지면,
우리 몸은 그 상황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진정한 채득에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매달리는 공부와 학습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암기해내는 기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을 잘 기억해낼 수 있는 이유는,
그 ‘목적성’이 나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나의 삶이 그것을 허락했기 때문에, 기억은 삶으로 각인되는 것이죠.
우리는 내가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가장 잘 기억하게 됩니다.
공부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일 뿐,
그 이전에 본질은 '삶'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이란, 결국 ‘나의 허락’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떤 것을 진정으로 기억하고 싶다면,
나라는 존재가 그 방향성과 조화롭게 물들어야 하며,
사고 또한 그 안에서 본질과 연결되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야 합니다.
이때 비로소, 그것은 당연한 것이 되며,
기억은 더 이상 억지스러운 암기가 아닌 존재로서의 통합이 됩니다.
자유란,
“내가 생각한 대로 삶이 살아지는 것”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고하는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합니다.
‘생각한 대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그 생각이 놓인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해야 합니다.
운동을 할 때
정석적인 자세를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말입니다.
결국,
사고(생각)가 방향을 잡고,
존재(몸과 마음)는 그 방향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균형이 맞춰질 때, 우리는 바라고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이뤄낼 수 있는 자유에 도달합니다.
생각이 본질을 꿰뚫고, 다시 존재로 되돌아오는 순환.
그것을 반복하며,
나는 점점 더 깊게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