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런 집

나는 녹지를 원할 뿐이다.

by 친절한다정씨


어느 날, 그런 집


그냥 나는 녹지를 원할 뿐이다.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뒤와 양옆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

나는 그런 곳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자랐다.


평생을 그 풍경 속에서 살다가 처음 집을 떠난 곳은 청주였다. 고향에 비하면 청주는 대도시였지만, 대학의 낭만과 녹지, 그리고 대학가의 조경은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웠다.


취직을 위해 다시 이천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리고 회사가 부지 확장과 투자로 안성·평택으로 이전했을 때도 주변의 녹지만은 여전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처음 둥지를 튼 집은… 그야말로 녹지가 부족했다. 해를 가릴 정도로 나무가 많은 곳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유모차에 태운 채로 녹지를 찾아 쉼 없이 헤맸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첫째는 자전거에 태우고, 둘째는 아기띠로 업어메고 들로, 공원으로… 닥치는 대로 초록을 찾아다녔다.


틈틈이 친정 시골로 내려가 일주일씩 머물며 시골병을 치료하던 날들도 있었다.하지만 첫째가 일곱, 둘째가 다섯이 되면서부터는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이제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된 지금,

나는 혼자 근근이 녹지를 찾아다닌다.

햇빛을 가릴 만큼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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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은 눈만 돌리면 산, 들, 논, 밭이 펼쳐지고

개울물이 흐르는, 사회 교과서 속 ‘배산임수’ 그대로의 풍경이다.


어릴 적 여름이면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물고기를 잡았고,

겨울이면 산에서 썰매를 탔다.

무려 열일곱 살까지.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자라서도, 나는 여전히 집 앞에 숲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숨 쉴 수 있는 공원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그런데 도시에서는 이런 집을 ‘숲세권’이라 부르며 판다.

나는 도서관이 가까운 집을 원했을 땐 도시에서는 ‘에듀’라는 이름을 붙여 집값에 프리미엄을 더했다.


요즘은 온갖 이유와 명목을 덧씌워 집을 비싸게 판다.


그저

숲이나 공원, 아니면 가로수라도 좋아서

눈에 초록이 들어오는 곳에서,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교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에서는 그런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전학을 완강히 거부하는 아이들 때문에 주거지 선택은 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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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닮은 아이 탓을 할 수는 없다.
한 번 뿌리내리면 여간해선 꿈쩍도 않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걸 테니까.

어떤 것이든 선택해야만 한다면,
그 선택이 최선이 되도록 만드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안정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예측 가능한 것들을 모두 제외하고 남은 것이 리스크라면,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집을 찾는 일도, 살아가는 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고르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그 선택의 크고 작은 흔적들이
내 삶의 풍경이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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