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나르시시즘: 우리가 사랑에
자신을 투사하는 방식

by 홍종민

그 남자는 왜 "그녀를 통해 내가 빛난다"고 말했을까


오후 5시 20분. 상담실 문이 열리자 30대 초반 남성이 들어왔다. 현수라는 그의 첫

마디가 인상적이었다.

"선생님, 제가 사랑하는 건 여자친구일까요, 아니면 저 자신일까요?"

6개월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 소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소연이는 제가 되고 싶었던 모든 모습이에요.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사람들한테 인기도 많고... 그녀와 함께 있으면 제가 빛나는 것 같아요."

현수의 사주를 보니 癸水(계수) 일간에 토(土)가 많아 흐름이 막힌 상태였다. 자존감이 낮고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현수씨, 혹시 소연씨를 사랑하는 건가요, 아니면 소연씨를 통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건가요?"

그 순간, 나는 프로이트가 말한 **'나르시시즘적 사랑'**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홍대 카페에서 목격한 현대판 나르키소스


작년 가을, 홍대의 한 카페에서 충격적인 대화를 들었다.

20대 후반 남성이 친구에게 열띠게 말하고 있었다.

"진짜 완벽한 여자친구야. 예쁘고, 똑똑하고, 집안도 좋고... 사람들이 우리 보고 완벽한 커플이라고 해."

"그 여자를 정말 사랑하는 거야?"

"당연하지! 아니... 잠깐, 뭔가 이상하네.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와

함께 있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또 다른 나르시시즘적 사랑이 진행되고 있구나.'


프로이트가 발견한 사랑의 비밀


프로이트는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통해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

이를 나르시시즘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진 것처럼, 우리도 상대 안에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사주에서 보는 나르시시즘 패턴


일간별 투사 방식

현수처럼 癸水가 약한 사주는 특히 나르시시즘적 사랑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흐릿한 정체성을 상대를 통해 확고히 하려 한다.

水 기운이 강한 사주: 상대의 안정감과 확고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火 기운이 강한 사주: 상대의 차분함과 깊이를 통해 자신의 과열을 진정시키려 한다.

土 기운이 강한 사주: 상대의 활동성과 변화로 자신의 정체를 깨우려 한다.

金 기운이 강한 사주: 상대의 따뜻함과 유연성으로 자신의 경직을 녹이려 한다.

木 기운이 강한 사주: 상대의 현실성과 안정성으로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착지시키려 한다.


정신분석 상담실에서 만난 거울 속 사랑들


사례 1: 지은의 완벽한 환상

"저희는 정말 완벽한 커플이에요."

지은(丁火 일간)은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자랑하며 상담실을 찾았다.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부러워해요. 남자친구는 키도 크고, 잘생겼고, 능력도 있어서... 저도 덩달아 빛나는 기분이에요."

"지은씨는 남자친구의 어떤 점을 가장 사랑해요?"

"음... 모든 게 완벽해요. 아, 그런데 요즘 조금 이상해요. 집에서는 게임만 하고, 저한테 짜증도 내고..."

지은은 남자친구를 자신의 이상적 자아로 투사했다가,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사례 2: 민호의 구원자 콤플렉스

"제가 없으면 그 여자는 아무것도 못해요."

민호(戊土 일간)는 정반대 방식의 나르시시즘을 보였다.

"여자친구가 우울증이 있거든요. 제가 계속 돌봐주고 있어요. 제가 그녀의 구원자 같은 존재죠."

"그 역할이 민호씨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 제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뿌듯함이 있어요."

민호는 상대를 구원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강남역에서 본 SNS 시대의 나르시시즘


지난달, 강남역 스타벅스에서 현대판 나르시시즘의 극단을 목격했다.

20대 커플이 데이트 사진을 찍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이 각도가 더 예뻐 보이지?"

"응, 이렇게 찍으면 우리가 정말 럭셔리 커플 같아 보여."

"인스타에 올리면 좋아요 엄청 받을 것 같아."

"사람들이 우리 부러워할 거야."

그들에게 사랑은 두 사람만의 감정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는 이미지였다.


나르시시즘적 사랑이 깨지는 순간


환상 붕괴의 현장


3개월 후, 현수는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상담실을 찾았다.

"선생님... 소연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어떻게 다른가요?"

"짜증도 잘 내고, 저보다 더 불안해하고... 제가 생각했던 완벽한 모습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소연이가 변한 게 아니라 제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전형적인 나르시시즘적 환상의 붕괴였다.


판교 카페에서 들은 분노


올해 초, 판교의 한 카페에서 환상이 깨진 분노를 목격했다.

30대 남성이 친구에게 격하게 말하고 있었다.

"완전히 속았어! 처음엔 그렇게 완벽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더 문제가 많았어!"

"그래도 좋은 점도 있었잖아."

"그런 게 아니야. 내가 기대했던 건 완전히 다른 거였어. 마치 가짜 상품을 산 기분이야."

나르시시즘적 사랑이 깨질 때의 배신감과 분노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나르시시즘을 넘어서는 성숙한 사랑


성공 사례: 수진의 깨달음


수진(己土 일간)은 나르시시즘적 사랑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케이스다.

"처음엔 남자친구를 통해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떻게 깨달으셨어요?"

"남자친구도 저처럼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정겨워요. 우리 둘 다 부족하지만 함께 채워나가는 거죠."

수진은 거울에서 인간으로 상대를 보기 시작했다.


나르시시즘을 넘어서는 세 단계


1단계: 환상 자각하기
"내가 상대에게 투사한 이상이 무엇인가?"


2단계: 현실 수용하기
"상대도 나처럼 불완전한 인간이다"


3단계: 동반자로 인식하기
"서로의 부족함을 함께 채워나가자"


건강한 나르시시즘의 긍정적 힘


자존감의 원동력


적절한 나르시시즘은 사랑의 필수 에너지다. "내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믿음 없이는 관계 자체가 불가능하다.


내 내담자 준영의 변화를 보자.

"예전엔 제가 너무 초라해서 누가 저를 좋아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적절한 자기애를

갖게 되니까 오히려 상대방을 더 여유롭게 대할 수 있게 됐어요."


성장의 동력


나르시시즘적 욕망이 건설적으로 활용되면 강력한 성장 동력이 된다.

"여자친구가 독서를 좋아해서 저도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였는데, 지금은 정말 재미있어요."

현대 사회의 나르시시즘: SNS와 이미지 사회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양상


SNS 시대에는 관계 자체가 콘텐츠가 되었다.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커플 인증샷의 강박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데이트


관계보다 이미지가 우선


내가 본 극단적 사례


지난주, 청담동 카페에서 들은 대화:

"오늘 데이트 사진 찍었는데 좋아요 100개밖에 안 왔어."

"그럼 더 럭셔리한 곳에서 찍어야겠네."

"맞아,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진을 찍어야지."

관계의 의미가 타인의 인정으로 전치된 모습이었다.

내 상담실을 찾는 이들에게

나르시시즘은 사랑의 시작점이지만 끝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을 통해 내가 빛난다"는 느낌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면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거울이 아닌 독립된 인간으로 보기


나의 환상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기


서로의 불완전함을 함께 받아들이기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 관계 만들기

상대가 내 이상을 완벽히 구현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시작이다.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져 죽었지만, 우리는 그 거울을 깨고 진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할 가치가 있다"

그 깨달음이 있을 때, 나르시시즘이라는 거울을 넘어 진정한 사랑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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