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라캉과 상징계: 인간을 묶는 보이지 않는 질서

by 홍종민

거울 단계의 아이들


2019년 여름, 나는 처음으로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에크리』를 펼쳤다. 프로이트를 재해석한 프랑스 정신분석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그의 명제는 내게 번개처럼 다가왔다. 사주명리학도 일종의 언어 체계가 아닌가? 22개의 간지(干支)로 이루어진 운명의 언어. 그렇다면 라캉의 언어적 무의식 이론이 사주 해석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라캉의 가장 유명한 개념은 '거울 단계(mirror stage)'다. 생후 6-18개월의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저것이 나다"라고 인식하는 순간. 하지만 거울 속 이미지는 통합된 전체인 반면, 아이가 느끼는 자신은 파편적이고 무력하다. 이 간극에서 자아가 탄생한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소외된 자아다. 진짜 나와 이미지로서의 나 사이의 영원한 분열.

상담실에서 나는 매일 이 분열을 목격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주를 보면서 "이것이 진짜 나인가요?"라고 묻는다. 사주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된 운명의 이미지. 하지만 실제로 느끼는 자신은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다. 이 간극이 바로 실존적 불안의 근원이다.

2020년 초, 스물세 살의 대학생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 혼란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저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그의 사주는 명확했다. 갑목일간(甲木日干)에 식신생재(食神生財).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인재. 하지만 그는 이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모님은 제가 의사가 되길 원해요. 친구들은 제가 예술가라고 해요. 교수님은 학자가 되라고 하고... 저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캉의 용어로 말하면, 그는 타자의 욕망(desire of the Other) 속에서 길을 잃었다. 거울 단계에서 아이가 부모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듯, 우리는 평생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 그의 갑목은 여러 거울에 다르게 비치고 있었다. 의사로, 예술가로, 학자로. 진짜 그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욕망은 무엇인가요? 타인이 아닌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그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모르겠어요. 제 욕망이 뭔지... 다 남의 욕망을 제 것인 줄 알고 살았어요."

이것이 라캉이 말한 소외(alienation)의 본질이다. 우리는 타자의 언어로 자신을 규정하고,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한다. 사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주적 타자가 부여한 이름표일 뿐, 진정한 자아는 아니다.


상징계의 그물망


라캉은 인간의 정신을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다. 상상계(Imaginary), 상징계(Symbolic), 실재계(Real). 이 중 상징계는 언어와 법, 문화와 규범의 영역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거대한 의미 체계. 우리는 이 상징계 속으로 들어가면서 주체가 되지만, 동시에 상징계의 포로가 된다.

사주명리학이 바로 상징계의 전형적인 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이 22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체계는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이 상징 체계가 우리를 포획한다. "당신은 갑목이다", "당신은 을목이다". 이 명명(naming)의 순간 우리는 상징계의 주체가 된다.

2019년 가을, 한 변호사가 찾아왔다. 마흔둘, 성공한 커리어우먼. 하지만 그녀는 공허했다. "제 인생이 제 것 같지 않아요." 그녀의 사주를 보니 정관정인(正官正印)이 강했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 실제로 그녀의 인생은 교과서적이었다. 명문대, 사법고시, 대형 로펌.

"이 길을 선택하신 건가요, 아니면 선택당하신 건가요?"

그녀는 멈칫했다. "선택...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정해진 길을 걸었네요."

라캉은 이것을 '상징적 거세(symbolic castration)'라고 불렀다. 상징계에 진입하면서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고 특정한 위치를 받아들인다. 그녀의 경우, '정관정인'이라는 사주의 상징이 그녀를 '모범생'이라는 위치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평생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당신의 사주는 엘리트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었어요."

"그럼 다른 길도 있었단 말인가요?"

"정관정인은 정의와 지혜를 의미합니다. 꼭 변호사일 필요는 없죠. 철학자일 수도, 사회운동가일 수도, 선생님일 수도 있었어요."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사주를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상징계의 그물망은 촘촘하지만, 그 안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라캉이 말했듯, "상징계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는 있다."


대타자의 욕망


라캉의 가장 난해하면서도 핵심적인 개념은 '대타자(the big Other)'다. 언어, 법, 문화, 무의식 등 우리를 규정하는 거대한 타자성. 우리는 대타자의 욕망을 추측하고, 그것에 맞추려 한다. "대타자가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사주 상담에서 이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사람들은 묻는다. "제 사주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마치 사주가 살아있는 존재처럼, 의지를 가진 대타자처럼. 그리고 그 '사주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 비겁이 강하면 독립적이어야 하고, 식상이 강하면 창의적이어야 하고...

2020년 여름, 한 어머니가 열 살 아들과 함께 왔다. 아이의 사주를 보고 영재교육을 시킬지 말지 고민이라고 했다. 아이의 사주에는 문창귀인(文昌貴人)과 학당귀인(學堂貴人)이 있었다. 학문의 별들. 어머니는 이것을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사주가 공부하라고 하는데, 안 시키면 안 되겠죠?"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뭘 하고 싶어?"

"축구요! 손흥민처럼 되고 싶어요!"

어머니는 당황했다. "하지만 사주에는..."

"사주는 가능성입니다. 명령이 아니에요. 문창귀인이 있다고 꼭 학자가 되란 법은 없죠. 축구 전술을 연구하는 것도 일종의 학문이에요."

라캉은 말했다. "대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The Other does not exist)." 우리가 상상하는 대타자의 욕망은 사실 우리 자신의 투사일 뿐이다. 사주도 마찬가지다. 사주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우리다. 우리가 사주에 투사한 우리 자신의 욕망이다.

그 어머니의 경우, 자신이 이루지 못한 학문적 성취를 아이에게 투사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주의 명령'으로 포장했다.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알리바이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녀 자신의 결핍과 욕망이었다.

6개월 후, 그들이 다시 왔다. 아이는 축구 클럽에 들어갔고, 동시에 축구 전술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문창귀인의 에너지가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 것이다. 어머니도 이제는 받아들였다. "사주가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저희가 정답을 만들어가는 거네요."


기표의 연쇄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했다. 더 정확히는 기표(signifier)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기표는 의미를 담는 그릇이지만, 그 의미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하나의 기표는 다른 기표를 불러오고, 그것은 또 다른 기표로 이어진다. 끝없는 연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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