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학대

by 슬로우

이제 어머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머니는 참 좋으신 분이셨다. 아버지와 달리 정도 많으시고, 활달하시고 말도 많으셨다. 사교성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 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할아버지를 모셔서 동네에서 효부상까지 받을 정도였다.


어머니의 치명적인 단점만 아니었으면 나는 사회적으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나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너무 신경질적이었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본인이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나와 내 동생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부 싸움을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혼을 하니 마니 하면서 어머니는 울고 불고, 아버지도 버럭 화를 내시다가 화나서 나가시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싸움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시댁의 문제였다. 어머니는 아내나 자녀들을 잘 돌보지 않고 부모님과 동생들만 챙기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시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신경질적으로 아버지에게 퍼부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화가 나서 서로 많이 싸우셨다.


나와 동생은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어린 여동생이 부모님의 부부 싸움에 놀라 경기가 온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님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예전에 진짜로 부모님이 심하게 싸우셔서 동생이 울다가 경기를 일으켜서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움이 시작되면 동생과 작당해서 적당한 시기에 동생이 경기를 일으킬 듯이 우는 연기를 했다. 그러면 대부분 싸움이 끝났다.


내가 성장해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부모님의 싸움은 계속 이어졌는데, 그때는 동생의 우는 연기가 먹히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두 분 싸우시면 내가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고 신발을 신는 연기를 했다. 그러면, 어머님이 우시면서 안 싸우겠다고 했다. 그렇게 싸움을 멈추고 나면 나와 내 동생은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이 계시다면, 제발 부탁인데..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싸우지 말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는 전부인 부모님들이 본인들 앞에서 싸우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큰 불안을 느끼고, 그 장면이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고통받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자녀들 또한 성장해서 부모가 되었을 때 똑같이 닮을 확률이 높다.


나 또한,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보고 자라서인지, 나는 절대 아이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수십 번 맹세했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아내와 살면서 아이 앞에서 두 번 정도 큰 소리 내고 싸운 기억이 있다. 싸우고 나서 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긴 했지만, 지금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속한 7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많이 맞으면서 자랐다. 인정한다. 그래서, 그게 뭐 대수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맞아도 정말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많이 맞았다.


어머니는 시댁 스트레스와 본인 히스테리를 나에게 푸는 듯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이 있고 활달해서 반장을 도맡아 하고, 친구가 많은 전형적인 'E'였다. 하지만, 원래 유전자 탓인지, 하도 맞으면서 주눅이 들어서인지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말수도 적어지고 항상 주눅 든 상태로 다녔다.


어머니에게 수없이 맞았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입학 전 일이다. 부모님은 외출하시고, 심심하던 나는 안방 장롱에 숨는 놀이를 하던 중, 안방 장롱에서 돼지 저금통을 발견했다.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순진하게 이 돈으로 문방구에서 장난감 총을 사서 친구들과 총싸움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돼지 저금통을 깨고 그 돈으로 총을 4자루 사서 친구들과 신나게 총싸움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얼마 후, 집에 온 어머니는 뜯어진 돼지 저금통과 장난감 총을 보더니 나에게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게 다 뭐냐고 해서 난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어머니 주변에 있던 물건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날아왔다.


어머니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손으로도 많이 때리고, 회초리도 많이 들었지만, 일단 주변에 있는 것들 중 잡히는 것 아무거나 던지거나 그걸로 나를 때렸다.


한 번은 나에게 던진 것을 옆에 있던 여동생이 이마에 맞아서 쓰러지면서 내가 덜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중학생이 된 나에게는 잔소리와 매질이 더욱 심해졌다. 한 번은 단지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는 이유로 그 당시 내 방 연탄보일러 옆에 있던 연탄집게를 집더니 연탄집게로 나를 때리셨고, 그걸로는 분이 안 풀리셨는지 내 교과서와 참고서를 다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그 당시 나는 5층 아파트에 살았는데, 내가 살던 아파트는 뒷베란다에서 그냥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구조였다. 각 세대에서 버려진 쓰레기는 1층에 모이고, 하루에 한 번 경비아저씨가 소각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그 쓰레기통은 각 세대에서 버린 각종 쓰레기 들로 엄청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떨어진 내 교과서와 참고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김치국물부터 뭔지 알 수 없는 이물질들이 잔뜩 묻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1층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다 맞고 난 후, 울면서 그것들을 다시 주워와서 어떻게든 이물질들을 휴지로 닦아내려고 했지만 잘 안 닦여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맞다 보니 나에게는 하나의 버릇이 생겼다. 누가 옆에서 손만 들어도 나를 때리는 줄 알고 몸이 반응하며 움찔하는 것이었다. 친구가 반갑다고 인사하며 손을 들어도 나의 몸은 움찔하며 움츠러들었고, 수업시간에 옆 친구가 질문한다고 드는 손에도 움찔하며 몸이 반응했다.


이 움찔하는 것을 완전히 고치는데 적어도 10년은 걸린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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