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집 밖에서는 엄청 활달하시고 유쾌하신 분이셨으나 집에 오시면 말이 거의 없으셨다. 그 당시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러셨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는 유독 말이 없으셨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와의 추억이 거의 없다.
지금 생각나는 몇 가지들을 나열해 보자면 이 정도이다.
1.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 데리고 간 것. 목욕탕에 의례적으로 갔을 뿐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끈끈한 정이나 부성애는 전혀 없었다.
2. 일 년에 두세 번 외식을 한 것. 그 당시에는 삼겹살이라는 메뉴는 없었고, 돼지갈비, 돈가스, 통닭 등이 인기 외식 메뉴였다.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는데, 어릴 적, 아버지는 집보다는 친구를 만나러 밖에 나가서 안 들어오는 일이 많았고, 어머니는 돈을 벌러 나가셔야 했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동생과 집에서 놀거나, 그 당시 어느 집에나 있던 100권짜리 전집을 읽었다.
100권짜리 전집을 어찌나 많이 읽었던지 지금도 많은 내용이 생각이 날 정도이다. 나와 내 동생이 그래도 좋은 대학을 나오고 내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것도 그때 형성된 독서 습관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커녕 혼내거나 꾸짖는 것도 거의 없었다. 우리를 혼내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기에 아버지가 침묵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아버지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후자가 맞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혼난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평소에 말수도 없고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신 것이라 그런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 때 내가 무슨 잘못을 하였다. 정확히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버지는 엄청 화가 많이 나셔서 나에게 화를 내신 후, 5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더니 5천 원 갖고 지금 당장 집을 나가라고 소리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동학대 수준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나도 어려서 그런 개념조차 몰랐다. 어머님이 놀라셔서 나에게 빨리 잘못했다고 빌라고 하고, 아버지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나에게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집에서 쫓겨난 나는 가방을 하나 달랑 메고 거리를 서성였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무섭거나 걱정되는 것이 아니고, 뭔가 해방감을 느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난 할아버지 댁으로 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날 비가 내리고 있었고, 초가을쯤이라 살짝 추운 날씨였기에 평소 가끔 가던 집 앞 떡볶이 포장마차에 가서 떡볶이를 먹으며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려고 찾아갔는데, 비가 와서 인지, 휴무일인지 모르지만 포장마차를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너무 추웠던 나는 일단 포장마차를 묶어 놓은 줄을 살짝 풀고 그 안에 들어가서 비와 추위를 피하였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어두워졌고, 난 점점 무서워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가 나를 맞아주시면서 그날의 가출 해프닝은 끝이 났다.
두 번째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발생한 일이다. 아버지는 6남매의 장남으로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투철했으며, 본인 스스로 장남이라는 타이틀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즉, 귄위의식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장착되신 분이셨다.
사건은 차 안에서 발생했다. 아버지가 운전하시고 나는 둘째 작은 아버지와 셋째 작은 아버지와 차에 타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가 나에게 무언가를 질문했다. 정확히 질문이었는지 지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아버지가 나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나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 고등학생의 무뚝뚝함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차를 갓길에 세우셨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시더니 나보고 내리라고 했다. 그리곤, 나의 멱살을 잡았다. 평상시 무뚝뚝하고 말도 없으시고, 별 교감이 없으신 분이 갑자기 내 멱살을 잡고 때리려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정신이 나가있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가 뭔데 내 동생들 다 있는 앞에서 날 무시하고 내 말에 대답을 안 해?'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아주 죽을 줄 알아.'
난 그때의 충격을 50이 넘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만큼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