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고?

by 슬로우

아버지는 경기도 소도시 출신이고, 어머니는 충남 바닷가 시골 마을 출신이시다. 이 두 분의 접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두 분은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었고, 나는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이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내가 중학생쯤 되었을 때 우연히 알게 되었다.


당시 23살이던 아버지는 친구들과 서해안 해수욕장으로 여름휴가 겸 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20살이던 어머니를 만나 원나잇을 한 것이었다.


아무리 배란일을 맞추고 준비를 해서 합방을 해도 임신이 쉬운 게 아니라고 하던데, 어머니는 단 한 번의 원나잇으로 나를 임신했고,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급하게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결혼을 하고 나를 출산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나온 배경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별로이다. 아무 대책 없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원나잇한 결과가 나라니..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준 은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6남매의 장남이었고,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장남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분이셨다.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자면 아버지는 결혼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성품이나 인격, 능력 등을 떠나서, 가족이라는 개념, 부부와 자녀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오직 부모와 형제밖에 없다. 이런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 가족들(아내와 자녀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안다. 생생하게 경험했으니까.


아버지는 머리가 굉장히 똑똑하신 분이다. 그 옛날에도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수재 소리를 들으시고, 지금도 족히 백개가 넘는 휴대전화 번호를 다 암기하시고, 웬만한 계산은 계산기 없이 암기로 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활력이 없어서 제대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젊을 당시는 경제성장률이 높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 시절이었다.


말단 공무원으로라도 일을 했으면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에게 손은 벌리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 얘기했듯이, 아버지는 능력이 없는 분이셨다. 특히 돈을 버는 능력이 없으셨다. 어렵게 직장을 들어가도 오래 다닌 적이 없고, 20대 때부터 사업을 한다고 여기저기 일을 벌이다가 망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도박을 좋아하셔서 친구들과 자주 도박을 하면서 밤을 새우고 아침에 들어오시곤 했는데,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생활비가 없을 때 밤새 도박을 하고 와서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한 움큼 쥐어서 어머니에게 주던 모습이다.


그 좋은 머리를 활용해 공무원 시험 준비라도 하시지 도박이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도박으로 거의 전재산을 날리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장남이 당신의 아버지를 닮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생활력이 아버지보다 강하셨다. 사실, 나의 어린 시절 대부분의 생활비는 어머니의 생활력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머니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머니는 7남매 중 넷째이다. 어머니는 굉장히 히스테리가 심하고 신경질적인 분이셨다. 20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먼 타향에 시집을 와서 어려서부터 시집살이를 해서 성격이 괴팍해졌는지 모르겠다.


어머니 본인 말로는 어머니가 외할머니 뱃속에 있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나 전쟁통에 외할머니가 피난 가느라 제대로 끼니를 못 챙겨 먹고, 항상 불안한 상태로 지낸 것이 뱃속에 있는 본인에게 다 안 좋은 영향을 주어서 본인 성격이 이렇게 히스테릭하게 형성되었다고 나에게 말하곤 했다.


내 생각에는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강력한 시너지를 형성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형성된 강력한 히스테리는 나를 매우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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