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 왕따 만들기

by 슬로우

나는 우리 집안의 장손이었다. 아버지가 6남매의 장남이고 내가 아버지의 장남이니, 할머니가 나를 엄청 에뻐하셨다. 초등학교 방학 때 할머니 댁에 방문하면, 나만 특별히 불러서 용돈 주시고, 맛있는 것 주시고, 나만 챙겨주셔서 사촌들이 질투를 하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연히 사촌 동생 결혼식에 참석을 하였는데, 우리 부모님과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친해 보였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해야 했다.


마치, 무슨 낯짝으로 여기를 왔냐고 쏘아보는 듯했다.


어릴 적 친하게 지내던 사촌 형이 있어서 인사를 하니, 나를 위한다는 듯이 나에게 한 마디 던졌다.


' 네 잘못이 아닌 거 아는데, 너도 알겠지만, 네 아버지가 친척들 돈 빌리고 안 갚아서 분위기 안 좋고, 너도 안 좋게 보고 있으니 굳이 이런 자리 오지 마라.'


어차피 앞으로 이런 자리에 올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그분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피 같은 돈을 떼였는데, 누가 웃으며 맞아줄 수 있을 것인가.


외가 쪽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친가만큼은 아니지만, 돈을 빌렸다 갚지 못하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확연했기에, 나는 그즈음부터 친가와 외가의 작은 아버지들, 외삼촌들, 이모들과의 왕래를 정말 끊어버렸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우리 집이 장손이었기에 명절이면 작은 아버지들이 전부 우리 집으로 모이곤 했었다. 하지만, 사업이 망한 후 명절에 우리 집을 찾는 친척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또 있었다.


아버지가 장남의 노릇을 못하니, 나머지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내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 중심에는 막내 작은 아버지가 있었다. 가장 성공하고, 돈이 많고, 잘 나가니 다른 형제들이 알아서 막내 작은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가 가장 큰 잘못을 한 건 당연하고, 가장 원망스럽지만, 결국 돈 앞에서 안면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니 사람이 싫어졌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과 교회 사람들 돈을 안 갚아서 나쁜 사람인 건 맞지만, 최소한 형제들은 그래도 아버지를 많이 따랐고, 큰 형이라고 본인들이 알아서 돈을 빌려주고 사업 잘 안 돼서 못 갚아도 괜찮다고 해놓고는 정작 사업이 망하자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특히, 작은 어머니들은 대놓고 내 면전에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기에 더 이상 친척들과 왕래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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