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죄 성립이 안된다고?

by 슬로우

아버지가 사업에 망하면서 많은 빚을 지고, 나도 피해를 많이 입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아버지와 절연할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도 잘해보려고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나에게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달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너한테 피해 가는 것 없으니 잠깐 달라고 해서 아버지에게 내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드렸다.


별로 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드리지 않으면 화를 내실게 분명하고, 설마 아들에게까지 사기를 치겠어? 하는 마음으로 드렸다. 아직은 아버지를 믿고 싶었다.


그리고, 사건은 나의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터졌다.




나는 예전부터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워낙 많이 보면서 자랐기에 부부 사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었고,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나 스스로도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자리 잡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29살까지 독신주의를 고집하며 연예조차 하지 않고 내 인생을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가는 데, 운명적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30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일주일 전까지 나는 내가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난 아직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내가 신용정보를 확인할 일도 없었고, 몇 년 전 아버지에게 드린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은 까맣게 잊고 지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신용불량자인 사실을 알았다면, 난 지금의 아내에게 청혼하지 않았을 것이고, 절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을 것이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내가 신용불량자인 것을 알게 되고, 너무 화가 나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아버지에게 따졌다. 어떻게 자식을 신용불량자 만들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의 답변이 더 가관이었다. 막 화를 내시면서 내가 해결할 건데 왜 그러냐고 조용히 하라고 오히려 나에게 큰소리를 치셨다.


해결? 당연히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는 분이 그냥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다.


내가 신용불량자가 된 것도 너무 웃기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버지 친한 사람이 사업을 하면서 차가 필요한 데, 그 사람이 신용이 안 좋아서 신차를 뽑을 수가 없으니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아버지는 본인도 신용이 안되니, 내 명의로 차를 뽑아서 그 사람한테 준 것이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시는 모습을 보니 정이 뚝뚝 떨어졌다.


원래는 내 명의를 빌려주고, 차 할부금은 그 사람이 내기로 했다는데, 그 사람이 안 내고 그냥 차만 갖고 다닌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나에게 얘기도 안 하고 해결도 안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 차는 경매로 넘어가고, 나는 차값에 이자가 붙어서 25년 전 4천만 원이라는 빚을 안게 되었다. 그 당시 4천만 원이면 지금 기준으로는 최소 1억이 넘는 돈이었다.


난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상위권 대학 상경계열을 졸업해서 대기업 여러 곳을 면접을 봤는데, 이상하게 최종면접에서 다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면접도 잘 보고 떨어질만한 특별한 감점 요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신용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 강한 의심이 들었다.


특히, 은행권은 서류 통과도 안 되는 것이 이상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국계 기업에 합격해서 다니고 있었지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었는데, 신용불량이 큰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아내 될 사람에게 이건 결혼 전에 얘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내는 놀라긴 했지만, 아직 젊으니 잘 해결해 보자며, 본인이 그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돈 4천만 원을 선뜻 내놓으며 일단, 신용불량부터 해결해야 하니 그 돈으로 빚부터 갚으라고 했다.


나는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결혼식은 잘 진행되었다.


이런 아버지가 내 동생이라고 그냥 뒀을까? 동생은 나보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 명문대를 졸업하고 먼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동생 명의도 받아서 동생도 신용불량을 만들어 버렸다.


너무 화가 나서 난 변호사를 찾아갔다. 아버지를 사기죄로 고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는 사기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부모를 고소하려고 마음먹은 그 심정은 그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이야기는 가슴 아픈 이야기라 여기까지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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