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나 어머니는 내가 결혼한 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서울로 야반도주한 후에 한동안 시간이 흘러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생기자 다시 일을 벌이셨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지만, 또다시, 무언가를 하신다고 추진하면서 서울에서 알게 된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셨고, 다시 한번 망하셨다.
그 당시 나는 아내와 함께 우리끼리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시댁은 최대한 신경 쓰지 말자고 하면서 최대한 열심히 살았다.
나는 점점 부모님과 연락하는 것이 줄었고, 부모님은 나와 연락이 잘 되지 않자, 아내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는 아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었고, 회의나 업무로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수시로 전화하셨다. 심지어는 회사 유선 전화로 전화해서 정말 별거 아닌 것들을 이야기하며 아내를 힘들게 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나에게 얘기를 했다. 어머니가 너무 연락을 자주 하셔서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고, 회사에 자기 시어머니가 정말 유별난 사람이라고 소문이 다 났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당장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앞으로 절대 아내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는 전화를 자주 한 적이 없다고 하며, 기분 나빠하셨지만 연락을 가급적 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내는 정말 착한 사람이었다. 결혼 전 내가 신용불량인 걸 알고도 자신의 돈으로 내 빚을 다 갚아주고, 그 부분에 대해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난 내 부모지만 너무 정이 떨어져서 연락을 거의 안 하고 살았는데, 아내는 꾸준히 부모님을 챙겼다.
나는 점점 부모님에 대해 절연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고 했는데.. 그동안 수많은 폭우를 맞으면서도 부모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부모님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가랑비를 내려주셨다.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이 아내에게 연락해서 '돈이 없어서 도시가스가 끊겼다. 너희한테 미안하구나.'라고 얘기하셨다. 돈이 없으면 나가서 폐지라도 주우시지 평생을 다른 사람 돈 빌려서 갚지도 못하고 그런 인생을 사신 분들이 이렇게 자식에게 계속 피해를 주니 나도 지쳐갔다.
아내는 12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도시가스 재연결을 위해 보내드렸다.
그 후로도 몇 달 간격으로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었다.
전기 요금을 못 내서 전기가 끊긴다는구나.. 너희한테 미안하다..
수도 요금을 못 내서 수도가 끊긴다는구나.. 너희한테 미안하다..
이가 너무 아파서 치과에 갔는데, 이 치료하는 데 200만 원이 든다는구나.. 너희한테 미안한구나..
주방에서 일하다가 넘어졌는데, 뒤꿈치가 부러져서 입원해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구나.. 너희한테 미안하구나..
이런 일들이 몇 달 간격으로 계속 일어나니 나도 아내도 점점 지쳐갔다.
두 분 다 경제관념이 없으셔서 평생 저축이란 건 해본 적도 없고, 돈을 많이 벌면 많이 쓰고, 적게 벌면 빌려 쓰고, 이런 생활에 익숙하신 분들이라 너무 화가 났다.
이때부터는 부모님 집 방문도 명절 때나 생신 때만 가는 등 평소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을 때는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이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직접 부모님 얼굴을 보게 되면 속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라서 참을 수 없었다. 미치도록 부모님이 미웠다. 왜 자식들 발목을 이렇게 잡으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