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한 말 한마디
엊그제의 일이다.
샴푸를 샀는데, 마개가 부서진 채로 도착했다. 반품 신청을 누르니, 가까운 매장에서 바로 반품할 수 있다고 안내가 떴다. 인터넷으로 구매했지만 이제는 매장에서도 반품이 가능하다니, 세상이 점점 편리해진다. 샴푸를 들고 근처 올리브영에 가서 반품을 마치고, 진료의뢰서를 받으러 동네 병원에 들렀다. 원래 수술 일은 10월 27일이었지만, 취소하고 30일에 다른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병원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대부분 코로나와 독감 예방접종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예방접종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40분을 기다려 진료의뢰서를 받았다.
이제 해결됐어, 미션 완료!
아직 하루 산책을 시켜주지 못해 종종걸음으로 집에 가고 있는데, 녹색 잎 사이로 핑크빛 꽃잎이 보였다. 배롱나무였다. 가을이 깊어가서인지, 기세 있던 핑크 꽃들이 거의 다 지고 한 송이만 유독 예쁘게 팔랑거렸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바람이 불어서 잎이 꽃을 자꾸 가렸다. 몇 번이고 시도해도, 머릿속으로 그려본 구도가 잡히지 않았다. 속으로 ‘아, 찍기 너무 어렵다.’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찍혀? 그게 움직이는데?” 하고 누군가 물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였다. 야구 모자에 체크 남방을 입으신 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이 느껴져 마음이 몽글해졌다. 우리 아버지도 꼭 저렇게 야구모자를 쓰시고 산책을 하신다. 햇볕 차단을 위해서다.
"네~안 찍혀요. 계속 바람에 흔들리네요~."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할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자니, 문득 작년 가을 심신이 지쳐 제주에 왔던 때가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자주 놀랐었다. 어디서나 낯선 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벤치에서도, 길가에서도.
그 첫 번째는 60~70대 정도의 여성분이었다. 하루와 바닷가 앞에서 쉬고 있던 내게, 내가 입은 블라우스가 마음에 든다며, 똑같은 걸 주문을 해달라고 하셨다. 브랜드 이름을 알려드렸지만, 인터넷쇼핑을 할 줄 모르시고 근처 사시는 따님은 바빠서 못 가르쳐 준다고 하셔서 내가 주문해 드렸다. 또 어느 날 하루와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을 땐, 지나던 할아버지가 제주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셨다. 30년간 회사 운영하시다 은퇴하시고 제주에 와서 전원주택 생활을 하셨지만 곧 아파트로 옮기셨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낮에는 그림같이 아름다웠지만 밤이 되면 적막하고 들짐승도 와 무서웠다고 하셨다. 또 어느 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에선, 한 할머니가 버스정류장으로 마실을 나오셨다며 말을 거셨다. 이 외에도 버스 안에서나 길을 걷던 중에도 낯선 분들이 종종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소소한 대화 속에서 지쳤던 내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프기 전 신랑을 만나러 오던 제주와 지금의 제주는 조금 다르다. 그저 아름답던 제주에서, 아름답고 정다운 나의 제주가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곳, 제주. 참 정답고 따뜻하다.
나는 제주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