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영업사원 차태현군
목요일.
전화기가 조용하다. 아직
'주말에 뭐하세요?'
이 멘트가 안나왔는데 말이다.
주말에 데이트를 하려면 적극적이면서 계산없은 착한 소개팅남인 경우는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엔
'주말에 뭐하세요?'
하는 카톡을 보내기 마련이다.
아주 적극적이고 더 착한 남자의 경우는 만나고 있으면서 다음 약속을 잡는다. (그러나 이는 주의해야한다. 만났을 때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고 그 이후에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또르르 ㅠㅠ)
나에 대한 마음이 세모인 경우, 한마디로 '더 알아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거나 계산적인 경우(더 좋은 소개팅 건수가 들어올 수 있거나 어항에서 물고기 한마리 꺼내볼까 하는 경우)는 고민을 하다가 목요일이나 금요일쯤에 연락을 한다. 아, 더심한 경우는 주말 당일에 "오늘 뭐해요?" 를 한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왔기에 차태현군은 전자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던 나의 확신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점심때 까지만 해도 주황불이었다가 퇴근즈음이 되니 빨간불로 급 전환되었다. 그는 후자였던가. 그는 너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영화제목만 생각나고 나는 소금에 저려진 배추처럼 시름시름 시들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닌가바...흑흑.. 갑자기 잠적했어. 내가먼저 해볼까?"
베프에게 전화를 걸어 울기시작했다.
"바쁜가보지. 뭐가 그렇게 조급해. 남자는 여자가 조급해하는거 진짜 싫어하는거 몰라? 절대 그 마음 들키면 안돼. 그리고 너 가만히 있으면 연락와. 절대 연락먼저하지마! 소개팅 한두번 해보냐?"
참 신기한 것은 소개팅이란 것은 리셋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소개팅을 할때마다 능숙해지고 달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리셋이 되어 처음 소개팅한 사람처럼 된다는 것.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그것이 소개팅이라는 것이다.
나는 또 처음 소개팅한 사람이 되어서 그사람의 밀당아닌 밀당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연락을 먼저 하지 말랬지. 그래, 연락올거야. 올거야. 긍정적인 마인드!
혼자 주문을 외워보고 하느님도 불러보고 전화기가 망가졌나 껐다 켜보고..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 힘든일이었다.
그렇게 괴로웠던 긴긴 목요일의 밤. 전화기는 울리지 않은 채로 끝나버렸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금요일이 밝았다. 아무것도 오지 않은 무심한 핸드폰을 꼭쥐고 잠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가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하염없이 초췌한 모습으로 겨우, 출근 하였다. 소개팅한 다음날보다 기분은 더 깊숙한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정말이지 출근하기 싫은 날은 이런날이다. 침대에 콕 박혀 다 잊고 자고 싶은데... 무단결근할 용기는 없고 일은 또 해야하고.. 울적한 마음을 스스로 모른 척하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쯤...
"까톡"
'굿모닝~ 출근잘했어요? 주말에 뭐해요?ㅎㅎ'
헉!!
차태현이다! 허거덩!!
끝난줄 알았던 차태현군의 카톡. 심장이 무릎아래로 떨어졌다 올라오는 것 같았고 하루동안 연락없던 것이 서운했으며, 동시에 또 반가웠다.
'당직하나 있고 약속은 아직 안잡았어요 ㅎㅎ'
최대한 감정을 감추며 시크한듯 무심한듯 답을 했다.
주말에 뭐해요?
데이트 신청의 전주곡같은 멘트가 나왔으므로 안정제를 먹은 양, 신기하게도 나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우리는 토요일에 강남역 교보문고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서점데이트가 이번 데이트의 컨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물었다.
'어떤 스타일로 입고 갈까요? 어떤 스타일
좋아해요?
1. 스마트 앤 댄디 스타일
2. 캐주얼 정장 스타일
3. 스포티한 스타일'
아아.. 이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맞춰서 입고 나오려나봐.. 어째 어째...
'ㅎㅎ전 1번! 댄디스타일이 좋아요^^'
조증이 되는 기분을 느끼며, 가만히 있으면 연락이 온다던 베프의 조언에 감사하며 좋지만 부끄러운듯 답했다.
강남역 교보문고의 그는 그 어떤 댄디스타일 보다도 더 댄디하고 더 스마트하게 보였고 교보문고와 너무도 잘어울렸다. (교보문고와 어울린다는 표현은 웃기지만 그랬다)나는 또한번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서점 데이트는 각자 서로에게 어울리거나 주고싶은 책을 골라서 선물을 해주는 데이트였다. 서로에게 어울리는 책을 고르며 생각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나누며 거니는 교보문고는,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적당한 조명에 쾌적한 공기가 있는 완벽한 데이트 장소였다. 그렇게 서로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고 강남역의 고급진 까페로 향했다.
각자 서로에게 선물할 책의 첫 페이지의 빈공간에 작은 메모를 써서 주기로 하였다. 맛있는 커피, 따스한 햇살, 부드러운 뉴에이지 음악, 보지말라며 (어차피 볼건데) 손으로 가리면서 열심히 손편지를 쓰는 그의 모습.. 모든것이 설레였다. 당장이라도 그의 여자친구가 되어 그의 건너편이 아닌 그의 옆자리에 앉고 싶었다.
세번째 데이트.
그는 꽃게찜이 먹고 싶다며 이번엔 소래포구 데이트를 제안했다.
그동안 그는 역시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다 한번쯤 잠적을 하였지만 지난 경험을 통해 나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아예 작정하였다. 결국 세번째 데이트 신청도 했으니까 히히
소래포구 가는 길은 험난했다. 데릴러 올 줄 알았던 차태현군은
'거리가 애매하니 소래포구에서 봐요^^'
라는 카톡을 보내왔다. 이 카톡 하나에 BMW를 타고 편하게 소래포구에 도착하는
내 여정은 전철을 타고 오이도역에 가서 버스를 타고 내린 후 걸어가는 빡센 여정으로 급 선회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어떤 다리를 건너는데 그 다리가 너무도 길어보였다.
' 뭔가 이상한데.. 잘되고 싶으면 데릴러 왔을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항상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데이트 신청의 주인공이 보자고 하는데 당연 가야지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 단걸음에 소래포구에 도착했다.
소래포구에 도착했지만 그는 아직 오지않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소래포구로 놀러왔나보다며 가고있는데 엄청 밀린다는
전화가 왔다. 괜찮다며 천천히 오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가 도착했고 이번엔 주차가 문제라고 하며 함께 타고 주차자리를 찾는데 그는 다소짜증이 나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주차를
하고 어시장에 꽃게와 회를 사러 갔다. 정말 전국의 사람이 몰린듯 좁은 어시장길에 사람들이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 사람이 많으니 어쩔수 없네요. 서로 잃어버리면 안돼니까요 ^^"
차태현 미소를 날리며 그는 내손을 꽉 잡았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고 심장소리가 안들킬만큼 시끌벅적한 어시장에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ㅇㅇ씨 어머님 뭐좋아하시려나? 오징어젓갈 좋아하시나요?"
그는 점수따야 한다며 우리가족을 위한 오징어젓갈 한통 사주었다.
꽃게와 회를 사서 식당에 들어갔다. 그는 꽃게찜은 발라서 주고, 회는 깻잎,상추,작은 마늘조각까지 넣어서 정성스럽게 싸서 내입에 넣어주었다. 나도 보답하고 싶어 더 크고 맛있어 보이는 회를 골라 올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올려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우리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에는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발라드를 불러 주었다.
그런데.
집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나의 마음은 왜인지 모르게 불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