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무지의 시절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존재했던 올챙이 시절.
대학원 수업 중이었다. 대학원 설계 수업은 90% 이상이 발표 수업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설계 내용을 발표하고, 수업 참가자들이 크리틱이라는 비평과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다.
단독주택 설계였는데, 1층·2층 도면의 설명을 듣다 보니 나는 의문이 생겼다. 1층 안방 위에 2층 욕실이 있는 것이다. 느낌상 소음이 심할 것 같았고, 경제적이지도 못하다는 직감에 의문을 제기했다.
발표자는 순간 당황했다.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었나 보다.
학창 시절부터 난 그런 부분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런데 발표자가 속한 연구실의 선배 한 분이 “배관을 꺾어서 시공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 선배는 실무경력도 어느 정도 쌓은 뒤 입학하신 분이라, 당시에는 그래도 된다 생각했다. 그리고 난 졸업하고 취업에 이르렀다.
실무에서도 정말 그랬다. 설비공간은 공간 구성보다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더욱이 소규모 건물의 경우는 벽에 설비배관을 매립하는 것도 허용됐다. 공간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나도 그렇게 배워서 설계를 납품했고, 실제로 시공됐다.
난 직장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부터 회사 내 문제가 발생되면 긴급 투입되곤 했다. 어느 회사를 가나 전담이었다. 감리나 리모델링 경험이 많다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남들과 다르게 난 건축설계를 디자인으로만 보지 않았다. 현장에 가면 작업 방식을 유심히 관찰했고, 개선된 내용을 설계도면에 반영하곤 했다.
그렇게 하자 부분에 대한 지식도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 스며들게 되었다.
팀장, 실장의 역할을 할 때쯤 내 설계방식에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설비 공간을 벽 속에 매립하는 것은 문제가 많았다. 도면 내 P.D라고 표현되는 설비 공간을 만들지 않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100년 이상 간다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30년도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늘 필요한 보일러와 에어컨도 10년 주기로 교체해야 한다. 설비 배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를 해야 된다. 우리 몸의 핏줄과 같은 설비 라인을 벽 속에 매립하는 것은 말이 안 됐다.
단독주택이든 다세대 건물이든 무조건 계획에 반영했다. 하지만 회사 책임 건축사들은 나를 이상하게만 볼 뿐, 어느 누구도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월급 받는 입장에서 내 주장을 고수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다시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개업을 하게 된다면 저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자. 그렇게 나는 현재 개업했다.
건물이 10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수명을 온전히 유지하려면 유지보수와 리모델링은 필연적이다. 주요 설비 라인들이 충분한 공간 속에 체계적으로 계획되지 않았다면, 최소 10년 후에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지만, 그 공간은 전력을 공급하기도 하고 수도를 공급하기도 한다. 모든 하수관이 그곳을 통해 정화조나 하수관과 연결된다.
주말 오후 빌라 주택에 거주하다 보면 가끔 물 내려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릴 것이다. 바로 벽배관 때문이다. 방음에도 취약하다. 오래된 건물이라면 벽걸이 에어컨 설치 시 그 배관을 관통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 순간 모든 건물의 기능은 마비될 것이다.
집과 건물을 지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누구나 점검이 가능하다. 문제는 설비 공간과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건설사들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책임은 다하지 않는다.
선택은 늘 당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