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감사일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여전히 감사일기를 쓰는 사람도 많다. 요즘은 감정일기나 성공일기 같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을 감사한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이 쓴 감사일기를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날씨가 좋음에 감사합니다.
- 오늘이 토요일임에 감사합니다.
- 엘리베이터에 감사합니다.
-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에 감사합니다.
- 가족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등등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한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지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사일기를 쓰기 위해서 실제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한다고 느껴야 한다니 일기를 위한 감사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누구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이 토요일인 것에 대해 시간에게 감사해야 하나?(오늘이 금요일이라면 신에게 감사하면 되지만)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대신에 나는 '사랑일기'를 쓰기로 했다. 일단 사랑을 하기로 했는데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몰라서 우선 가까운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 초가을에 들어선 이른 새벽에 느껴지는 선선한 공기를 사랑한다.
- 푹 자고 일어날 수 있는 토요일을 사랑한다.
-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사랑한다.
- 사고 없이 무탈한 일상을 사랑한다.
- 나를 지지해 주는 가족들을 사랑한다.
- 얼큰하고 쫄깃한 뼈해장국을 사랑한다.
등등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하였는데 아직 사랑하기 힘든 존재들이 몇 있다. 모기, 아기 그리고 동물. 나는 아직까지 모기에게 감사하다는 일기를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가려움을 느껴서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 모기에게 감사한다." 라는 일기를 쓰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모기는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기 힘든 존재이다.
아기와 동물을 사랑하기 힘든 이유는 대화와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기와 동물은 의사소통을 울음으로 한다. 잘 훈련된 동물은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대화와 이성을 통해서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기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아기와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스무 살의 마음으로 아기와 동물들마저 사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