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침 5시 반

129일 차

by 다작이

나는 아침 5시 반에 일어난다. 어찌 보면 이른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더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에겐 한참 늦은 시간이다. 의외로 우리 주변엔 이른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거기에 자극을 받은 것도 있고, 일찍 일어난다던 어느 변호사의 책을 읽고 나서 나 역시 한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연습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얼마 안 가 알게 되었다. 솔직히 새벽 4시 기상은 내게 불가능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 며칠간은 요행히 일어났다. 그런데 그건 하나 마나 한 일이었다. 줄곧 잠에 취해 하루를 보내게 되었고, 좀처럼 적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새로운 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전날밤의 취침 돌입 시각 자체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했다. 가령 저녁 10시 반쯤엔 잠에 들어야 4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면 대략 다섯 시간 반 정도 잘 수 있으니 하루를 버티는 데에 큰 무리가 없게 된다. 그런데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취침 전의 그 꿀 같은 자유 시간을 포기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가족 모두가 깨어 있는 그 시각에 혼자서 잠자리에 드는 게 여의치 않았다.


당연히 내 시도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꽤 긴 시간을 들여 생활의 패턴 자체를 바꿔야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게 어쩌면 수면 시간의 변화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결국 방학 기간을 이용해 습관을 들이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일어나면 20분 남짓 출근 준비를 마친 뒤에 6시를 전후로 집을 나선다. 지하철을 타고 대구역으로 이동한다. 매번 느끼는 건데, 이 시각에 지하철을 타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죄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아니면 좌석에 기대어 쪽잠을 청하고 있다. 가끔 주위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스마트폰의 음량을 크게 틀어놓는 몰상식한 사람(왜 꼭 그런 이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일까?)이 있긴 하지만, 막상 지하철에서 보게 되면 달리 방법이 없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여길 뿐이다. 이런 무례한 사람들만 마주치지 않는다면 지하철 안은 하루를 계획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18분 걸리는 이 타이밍에 대체로 나는 하루의 첫 글을 쓰기 시작한다. 넉넉잡고 1시간이면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고, 못 해도 절반 이상은 쓴다. 대구역에 도착하면 6시 50분이 된다. 곧 도착하는 기차를 그냥 보낸다. 뒤의 기차를 타고 갈 때와 비교하면 고작 30분밖에 차이가 안 나는 데다, 이 기차를 타면 학교 앞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타지 않는다.


다음 기차가 오기까지 남은 30분 동안 계속해서 글을 쓴다. 물론 지하철에서 쓰던 글에 이어 쓴다. 간혹 운이 좋으면 새로운 글을 쓸 때도 있다. 목적지인 왜관역까지는 23분이 걸린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다시 글을 쓴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 글만 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수년 동안 이것저것 해본 결과 출퇴근 통근 시에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글쓰기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왜관역에 도착하면 7시 50분을 약간 넘어선다. 사실상 나의 본격적인 하루의 시작은 왜관역에 도착한 뒤부터다. 집에서 나설 때에는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 이유다. 역에 내린 뒤에 학교로 가는 마을버스가 오기 전의 15분을 기다리면서 비로소 '오늘도 출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때에도 역시 는 글을 쓴다. 버스는 18분쯤 걸린다. 학교에 도착하면 8시 25분, 집을 나설 때부터 대략 2시간 20분 남짓 나는 지하철, 기차, 그리고 버스 안에서 글을 쓴다. 물론 이들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글을 쓴다.


지하철을 기다리기 시작할 때 글을 썼는데, 이제야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하루의 출발을 글쓰기로 시작해서, 하루의 마감 역시 글쓰기로 마무리한다. 아침에 나서던 그 길을 고스란히 되짚어가는 동안 마찬가지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에 대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