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늦었다..’
알람을 십분 간격으로 세 번이나 설정해 놓으면 뭐 하나.
세 번 다 끄고 자는 걸.
내 삶에 잠 때문에 늦는 일이 이렇게 빈번해질 줄이야.
이번 생에 잠은 내게 사치라고, 언젠가 이곳 여정을 끝마치고 떠나게 되면 그땐 실컷 잘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달래던 날들이 있었다.
새벽이면 꼭 한 번씩 놀라 벌떡 깨는 일도, 잠결마다 수신된 문자와 전화를 틀림없이 확인하던 일도, 그러다 신발을 들고 현관 밖으로 뛰쳐나가던 일도 이제는 조금씩 나와 멀어져 가고 있었다.
몸과 정신 중에 하나라도 변모될 수 있다는 건 어쨌든 내게 다행인 일이었다.
정작 변모해야 할 어떤 것이 아무리 위중하다 할지라도.
늦은 나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학교 앞 문구점.
‘피식’ 왠지 웃음부터 나는 장소의 조합이다.
귀여움과 귀여움, 따뜻함과 따뜻함, 추억과 추억.
뗄 레야 뗄 수 없는 그 조합이 참 좋았다.
그 안에 있으면 잠시만이라고 바라던 일이 오래가 되고 오래오래 바라던 일이 영원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 멀리 익숙한 신호등이 보이고 진한 커피의 향이 코끝에 닿기 시작한다.
이미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그들의 대화를 상상할 수 있다.
“아니, 지금 30분이 넘었잖아! 영업시간은 대체 왜 써놓지?”
“지난주에는 9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는데도 안 오셨어.”
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버무려지는 그 속으로 뻔뻔한 얼굴을 내밀어 본다.
최대한 힘겨운 얼굴과 최대한 지친 어깨까지 함께.
“얘들아.. 헥헥..
3분 늦었어.. 좀 봐주라.. 헉.. 헉..”
숨을 최대한 더 몰아 쉬어본다.
나의 친애하는 고객들의 불타는 감정이 조금은 가시도록 말이다.
“사장님, 사장님은 잠을 많이 자서 키가 아직도 자라요?”
그 말에 옆에 아이들도 같이 키득거린다.
“잠꾸러기 거인 아저씨!!!”
자꾸 나를 거인 아저씨라 부르는 이 귀여운 녀석의 이름은 ‘신해랑’.
올해 3학년이 된 녀석은 눈매가 아주 깊고 진한 남자아이다.
실내화 가방을 주 3일이나 두고 갔던 너의 1학년 시절을 너는 정녕 잊었단 말인가.
“요 녀석~!! 해랑아, 오늘도 아침부터 마라 맛 곤약이냐?”
“그거 이제 안 사요. 엄마가 한 번만 더 먹으면 아이템 충전 다시는 안 해 준다고 했어요. 진짜 너무해.”
쭉 나온 입으로 문구점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소파에 털썩 몸을 맡기는 녀석.
문구점 안쪽에는 나의 사심이 가득 들어간 푸른빛의 소파가 있다.
성인 3명쯤 나란히 앉아도 될 정도의 크기지만, 내 자리는 아니고 전적으로 이곳을 오가는 아이들을 위한 곳이다.
실내화를 살 때 알맞은 사이즈를 꼼꼼하게 고르기에도 편하고,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고민이 깊을 아이들에게는 생각하는 의자가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소파의 기본 역할에 충실할 것.
누구든지 기대고 싶은 사람은 기대고 가기.
학원과 학원 사이의 갈 곳 없는 시간에, 엄마와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에, 친구들과의 약속보다 일찍 나온 시간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그런 시간 속에서 그들이 덜 쓸쓸했으면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안전했으면 하는 것.
해랑이는 소파에 몸을 묻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늘 집어오던 마라 맛 곤약을 또 내민다.
“... 에?”
“아침엔 먹고 학교로 가잖아요. 엄마는 몰라요. 히히”
매일 백 가지 정도의 어처구니와 마주하는 이 일을 나는 여전히 적응 중이다.
어쩜 이 아이들은 순간순간 새롭게 리셋되는 걸까.
탐나는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천진함 속에 각자의 특별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보기엔 마냥 귀엽지만, 그 안엔 나름 예리한 논리가 있다.
카드를 건네기도 전에 봉지가 뜯어지고 이미 해랑이 입가엔 주황빛 물이 들어있다.
아마도 하교할 때는 주황 물이 지워져 있을 테지.
해랑이 어머니께는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학교 안에서의 하루는 어쩌면 쉽게 지워지는 일과 지워지면 안 되는 일로 나뉠 수도 있겠구나.
멀어져 가는 그 녀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밀린 아이들의 계산을 위해 깊어지려는 나를 황급히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