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나는 '외국'이라는 세계를 항상 동경했고, '외국'에 사는 게 항상 꿈이었다.
대학교 2학년 '미래의 나'를 제약 없는 형식으로 소개하라는 과제에 나는 거침없이 노란 머리 외국인과 결혼하여 한인 민박을 운영하는 8컷짜리 만화를 그려 제출했다. 심심하거나 무기력할 때는 여행 에세이와 여행 유튜브를 들쳐봤고, 21살 처음 홍콩 여행을 갔을 적에는 아, 내가 상상하던 외국은 기대보다 더 설레는 곳이구나라고 두고두고 떠들어댔다.
2018년 터키 교환학생 - 2019년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외국만 나갈 수 있다면 닥치는 대로 나를 데려가 달라고 사정했다. 그리고 2025년 4월 나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스텔에서 일하다 만난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다시 비행기에 오르기로 했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만료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교 졸업 전이었기 때문에 비대면 수업으로 4학년을 마무리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은 언제 하게'라는 말이 나를 다시 끊질기게 따라붙었고, 취업이라는 과제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캐나다에서 하루하루를 충만하고 나답게 살아갈 때, 한국 취준생들은 치열하게 달리고 있었고, 그들의 철두철미한 스펙 앞에서 나의 전투력은 0이었다. 수십 번 서류 낙방 끝에, 그래 그냥 내 분수에 맞고 그동안 내가 일하고 싶었던 업계로 눈 낮춰 시작하자라고 마음을 내려놓고 합격한 곳에서 나의 첫 직장 생활이 시작됐다. 평소에도 남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보는 눈 많고 비밀이란 없는 회사 속에서 점점 내 원래 모습은 사라져 갔다. 1년, 2년, 3년 사회생활에 무던해지고, 신입의 티를 벗었을 때 문득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 깊이 숨겨 놓은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 남자친구를 꺼내 들기로 했다.
이제는 더 이상 20살 초반 대학생도 아니고,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할 30을 앞둔 나이었기에 커다란 책임이 따를 것도 알아 망설여졌다. 바닥에 고꾸라져도 하루 이틀이면 회복하는 옛날 같은 몸상태도 아니고, 외국으로 가게 되면 한가득 걱정할 엄마도 눈에 자꾸 밟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외국인 남자친구와 외국살이를 경험하러 퇴사를 결정했고, 퇴사와 동시에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