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인은 지옥일까

서로를 견디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우리에 대하여

by Selene H

‘타인은 지옥이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의 희곡인 《닫힌 방》에서 나온 말이다.

가르생, 이네스, 에스텔 — 세 명의 등장인물은 각자 죄를 짓고 지옥에 모인다.

이들이 들어온 지옥은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된 지옥처럼 활활 타는 불구덩이도, 형벌로 인한 비명소리도 없다.

미노타우르스나 케르베로스와 같은 공포스러운 괴물도 없고

오직 불이 꺼지지 않는 전등과 세 개의 의자, 청동상 만이 있다.


밖을 볼 수 있는 창문도,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도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타인의 말과 시선에 의존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곳.


이곳에서 이들은 각자 자신이 지옥에 오게 된 이유를 털어놓으며 공감과 위로를 바라지만 결국 서로를 경멸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를 판단하고 혐오하면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상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모순된 욕망 속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친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질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이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무한한 자유 앞에 던져진다.


어둡고 고요하며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는 심해 같은 자유 앞에서 인간은 불안하다.

‘나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스스로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내가 누구인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받고 싶어 한다.


한없이 나약하고 불안한 우리는,

나 자신의 부족한 작은 퍼즐 조각을 쥐고 있는 타인을 쉽게 이상화하기도 한다.

혹은 나의 존재를 부여잡기 위해

불가피하게 타인을 기만하고,

그 존재를 연료로 삼기도 한다.


타인에게 승인받고 존재로서 추앙받는 감정은,

스스로 닿고 싶어 하는 어떤 완전함에 이르는 듯한 착각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시《꽃》처럼 우리는

타인에게 잊히지 않는 눈짓과 깊은 존재로서 남길 원한다.

그러나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의 의지와 너의 의지가 서로 쉴 새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엉키고 씨름을 하는 것이 관계 맺음이기에,

어쩌면 우리의 삶은 ‘닫힌 방’ 속 지옥과도 닮아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이라는 지옥 속에서 매스를 들고 스스로의 내면을 아프게 파헤쳐본 인간의 깊이는 아름답다.

사람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끊임없이 나를 판단하는 타인들 속에서,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때로는 상처를 주어야만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관계의 지옥 속에서도.

그럼에도, 그러한 순간 속에서조차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고 보듬기 위해 힘겹게 움직일 수 있기에 우리는 인간이다.



또 나는 그러한 인간이 되고 싶다.

지옥 속에서 고통을 무릅쓰고

나 자신의 존재를 직면하며, 용기 있게 나의 벌거벗은 감정과 ‘너’를 정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눈빛과 표정,

비언어적인 에너지와 기류를 통해서도

존재로서의 연결됨을 느끼는 우리 인간은 결국 영적인 존재이기에.

존재와 존재의 만남은 지옥일지라도,

누구도 투명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꽃이 피려다 만 느낌이야”

아프지만 용기 있게 자신을 직면했던,

관계 맺음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나를 하나의 존재로서 인정하고 세워주었던 오래전 사람,

또 내게 머물다 지나간 사람들에게.

당신의 앞길에 고요한 감사와 빛을 담아 축복을 보냅니다.


사진: 필자 촬영 | 장욱진, 〈사람〉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작가의 이전글2. 예술이 나의 불안에 말을 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