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립고, 기어코 만날
참으로 소란 스런 계절입니다.
가뜩이나 짧아진 가을이 이러면 안 되죠. 좀 너무하다 싶기도 합니다.
유난스럽기론 여름도 마찬가지긴 하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 뜨거움도 마음까지 무지근하게 적시는 습함도 이미 알아 익숙해서 일까요? '어우~야! 이건 좀 아니지' 하며 흘겨보다가도 '그래, 넌 한결같았는데 내가 잊고 있었네' 하면서 아직 입어보지 못한 옷, 만나지 못한 사람, 보지 못한 풍경이 생각나, 열대야보다 지독한 아쉬움과 그리움에 잠 못 드는 시기가 오면, 이제 여름이 끝나는구나 하며 늘 서운했던 것 같습니다.
요 며칠을 그렇게 밉던 햇살마저 보이지 않으니 그 여름이 너무도 갑자기 떠난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작별 인사도, 곧 다시 보자는 약속도 하지 못한 게 괜스레 미안하고 서운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그에 대한 답례라도 하듯 온기 가득한 햇살이 참 좋고 반가운 날입니다.
눈이 부셔 해에 손을 담그니 그 손에 감기는 따스함과 상쾌함이 너무 좋아 한참을 주름 가득한 웃음으로 찡그린 체 서있었답니다. 그리고 누구나 보았을 오늘의 햇살에 어느 분의 통증도, 어느 분의 불안도, 어느 길고양이의 젖어 떨던 추위도 모두 다 씻기지 않았을까 하는 감사한 생각도 해 보았고요.
여름내 가둬둔 열기를 요즘처럼 온기가 그리워질 계절에 조금씩 풀어내어 주는 이 햇살이 한동안은 절실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누군가 제게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설레고 기다려지냐고 묻는다면 여름이라고 답할 것 같아요. 여름은 늘, 나만 미리 설레게 했다가 나 혼자 미워하고 내가 먼저 아쉬워하게 하는 그런, 너무 미워 예쁜? 너무 예뻐 미운? 그런 사람 같달까요. 전 그 한결스러운 무심한 다정함(?)이 사람 마음과 꼭 닮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음, 성혜나 작가님의 문장을 빌리자면 '다정을 체화하지도, 자상하려 애쓰지도 않는' 정도? 그럼에도 항상 그립고 설레고 보고 싶고 안부가 궁금하여, 그래서 가능한 눈이 가는 곳에 펼쳐두고 싶고 손이 가는 곳에 담아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꾸미고 애쓰지 않아도 언제나 설레고 항상 다정한 그런 사람을 닮은 계절.
그리고 언제나 설레고 항상 다정하다 생각하는 그 계절에, 그 계절을 닮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된 감사한 계절. 작은 마음을 전했는데 아주 큰 감사를 받는 느낌의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 참 좋아졌어요.
살며, 일하며 이렇게 뭔가 한다는 것에 설렘이 있었던가 하고 마음에 물어보니 없더라고요.
아, 돈이 개입되면 또 모르겠네요. 원체 속물이라 쓴 만큼 번다 뭐 이렇게 변질될지도 모릅니다 만, 정말 멀거나 오지 않을 미래의 이야기 일 것 같고요.
한동안은 이 설렘을 잊지 않고 지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돌아가야 하는데 여름이 돼버렸고 즐거워 웃다 보니 가을이 왔고요. 추운 계절에 이곳의 단어들이 궁금해서 여름 과는 다른 설렘이 시작되었거든요.
마냥 좋기야 하겠어요.
지독한 몸살 전의 기분 나쁜 열오름도 있을 거고
통증이 시작되기 전의 뻐근함도 있겠죠.
간질간질한 목과 말라가는 입술에서 오는 묘한 긴장감까지.
그 모든 찰나를 놓치지 않기로 합니다.
행복한 순간도 조금 아픈 순간도
모든 설렘을 기억하고 다시 올 설렘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설렘이 없다면 그 무엇도 하지 못할 거니까요.
햇살에 팬을 담아 온기로 쓰일 따뜻한 글들이 보고 싶어 집니다.
가능하면 써보기도 싶고요.
스친 사람, 읽은 문장, 가둔 장면, 울린 소리.
그 모든 찰나의 기억과 감상을 써보고 싶어 무척 설렙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면 조금은 가능해지겠죠.
"미래에서 기다릴게"
"응, 금방 갈게, 뛰어갈게"
info.
영화_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년
좋아하는 문장_ "미래에서 기다릴게 / 응, 금방 갈게, 뛰어갈게"
나만의 킬포_ "요시야마 가즈코 (마코토의 이모)"
epil.
금방 가지도 못하고 뛴다고 해서 도달하지도 못할 것 같긴 한데요.
햇살이 너무 좋아 한껏 들떠 보기로 한 하루였습니다.
가능하면 머리에 꽃이라도 꼽고 싶네요.
모두들 랄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