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지요.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특성이 변덕이 심해 쉽사리 흔들리는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겁니다. 한편으론 단순히 약한 존재가 아니라 작은 바람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이 가득한, 그래서 변화와 감정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존재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갈대. 갈대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 잘 흔들리는 존재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의미인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그게 사랑의 감정이든, 기쁨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어느 순간 갑자기 분출하는 감정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니 말입니다. 이놈의 감정은 워낙 변화가 무쌍한지라 어르고 달래도 도대체가 말을 듣지를 않고, 차라리 생각을 말자고 하면 더 요동을 치니 고민도 그런 고민이 없으니까요.
흔히 ‘감정은 인간이 세계와 마주할 때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내면의 반향이자, 존재를 증명하는 생생한 울림’이라 했습니다. 감정의 그 ‘즉각적’이고, ‘생생한’ 특성 탓에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감정이란 놈은 애시당초 누르면 누를수록 더 반발력을 갖는 청개구리요, 용수철과 같은 성정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는, 그래서 이성 마비의 순간을 맞게 되는 것이 감정이란 놈의 정체인 걸 어쩌겠습니까.
사실 이성(理性)은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논리적인 사고체계입니다. 저 혼자 ‘즉각적이고, 생생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으니, 이성이 나서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성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는 감정이 수두룩하니 그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신(神)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합니다. 한 인간의 삶 전체를 흔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神)적인 무엇이라 여기는 거지요.
어떤 상황에 닥치거나, 어떤 사람을 보기만 해도 즐겁기도, 슬프기도, 분노가 치밀기도, 더러는 끓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그냥, 저절로 이는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하니 그저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유치환 시인이 파도 앞에서 ‘님은 뭍 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고 절규하던 그 마음이 그렇고, 젊은 베르테르가 실연당한 슬픔을 어쩌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이성적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듯, 감정은 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특별한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감정이 특히 그렇습니다.
<감정수업>을 쓴 강신주는 ’사랑의 감정은 우리를 현재에 살게 하고, 안전한 삶을 바라는 생각은 우리를 미래에 살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안전한 삶을 바라는 마음은 결국 현재의 열정적인 삶을 죽이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현재 누려야 할 행복과 기쁨을 미래로 미루지 말라‘고 충고하는지도 모릅니다.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그들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믿고 따르고,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그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는 것일 겁니다. 그것만이 현재라는, 또 지금, 이순간의 충만한 삶을 누리게 하는 특별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인 것이지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감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제대로 된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나쁜 감정(슬픔, 욕심, 열등감, 비루함 등등)까지도 믿고 따르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 자신의 감정이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정확히 식별할 수 있어야 함은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요.
흔히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살라‘고 말합니다. 숙제는 내일을 위해 하는 것이고, 축제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감정이든, 그렇지 않은 감정이든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맞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만의 충만한 현재를 살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라 하니 말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감정이 이끄는 현재마저도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오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오는 것은, 그냥 가버리고 마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니 말입니다. 감정을 믿고, 그 감정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우리 삶의 터전인 오늘은, 지금 이 순간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오늘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끝으로, 우리가 감정에 대해 착각하는 것 중 한 가지는 ’감정은 순간적‘이라는 오해와 편견입니다. 물론 영원히 존재하는 감정이야 있으랴마는, 그렇다고 일시적이거나 순간적이지도 않다는 것이지요. 감정은 최소한 우리 삶의 속도만큼은 지속되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감정이, 마음이 바뀌었거든, 그 마음을 다시 찬찬히 살피고, 보살피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인간도, 마음도, 감정도, 결국은 갈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