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공황장애를 선물로 받았던 기억


아버지 간병을 집에서 할 수 없던 상황, 마포 요양병원에서 며칠 계시다 새벽에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응급실에 모시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내 가슴 한편에 깊게 박혀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라, 병원 곳곳이 긴장과 피로로 가득했고 나 역시 감정이 복잡했다.

응급실 초입, 응급의학과 의사였는지 정확 친 않지만 의자에 앉은 선생이 아버지 상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 의사는 아직 인턴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너무도 냉정하고 가혹하게 느껴졌다.

혈압, 심박동 체크, 인적사항, 복용약물, 기저질환등 등....

"언제부터 악화됐나요? "

"무슨 약을 복용했나요? "

"정확히 어떤... 증상이 있었나요?”


당황스럽고 초긴장 상태라 세세하게 기억날 리도 없지만, 꽤 여러 질문이 오고 갔다. 물론 필요 수순이라 이해는 한다. 내가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오히려 ‘마포 요양병원에 전화해서라도 알려달라’며 다그쳤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했다. 코로나19 시절의 무서운 긴장감 속에서, 나는 그저 아버지를 지키고 싶은 딸일 뿐이었다. 울컥 눈물이 터졌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 거죠? 왜! 이렇게 다그치세요...”

내 목소리는 떨렸고, 감정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절박하고 비참했다.


그 의사도 분명히 지쳐 있었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을 테지만 내 마음은 너무나 아팠다.

그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결국 하루를 더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의사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순간 내 안에 분노와 슬픔, 무력감이 뒤섞인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약자로서 받은 차가움과 무심함에 마음이 갈가리 찢긴 느낌이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나는 그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다. 결국엔 선물로 공황장애까지 와 버렸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가끔 과호흡으로 힘들다.

‘왜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하는 원망과 ‘그 의사를 어떻게든 혼내고 싶다’는 충동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경험은 나를 조금씩 다르게 만들었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면서, 말이 아닌 힘든 감정을 쓰면서 치유와 안도의 상태를 맞이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내 삶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나는 그날의 감정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려 노력했다.

비록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한 슬픔이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료진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들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음을 이해하면서, 나 역시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다잡았다.

그날의 기억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내 마음속에 남긴 파도는 결국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그때의 슬픔뿐 아니라, 그 사랑과 감사함도 함께 느낀다.

그 기억이 나를 흔들 때도 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성장하고 치유되고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대신, 그를 사랑했던 나의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그런데도... 아버지가 보고 싶어 또 조용히 숨죽여 운다.

지금은 새벽 02시. 응급실에 도착했던 시간.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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