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여행기 3
로마 여행기 2화에 이어지는 3화(마지막)입니다.
쉴 새 없이 차량은 베네치아 광장을 지나 통일기념관 옆 인도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통일기념관에서 우리는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올라갔다. 캄피돌리오로 올라가는 계단과 광장도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코르도나타라고 불리는 이 계단은 미켈란젤로의 놀라운 설계가 숨어 있다. 위로 갈수록 폭을 넓게 만들어 아래서 볼 때는 실제 높이보다 훨씬 낮게 보이는 착시효과를 만들었다. 이는 오르는 이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천재적인 배려였다.
캄피돌리오 광장 중앙에는 로마제국 시기 대표적 스토아학자로 <명상록>을 남긴 아우렐리우스가 말을 탄 모습의 동상이 있다. 이것은 흔하지 않은 동상이다. 사실 이탈리아 전역에 세워진 동상 대부분은 통일의 황제 에마누엘레 2세이다. 그리고 광장 입구에는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카스트로와 플록스 형제가 지키고 서 있다. 소년의 형상이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마냥 어리게 보이지는 않는다.
캄피돌리오 광장에는 검은 바닥에 하얀색 선들이 타일로 모자이크 되어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직사각형의 그 광장을 넓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 선을 넣었다고 한다. 광장 반대쪽 세나토리오 궁전에서 내려다보면 우리 눈에는 그 선이 원으로 보인다. 역시 천재일세!
캄피돌리오라는 말에서 오늘날 수도를 뜻하는 영어 캐피털이 나왔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캄피돌리오 광장 옆으로 빠져나간다. 조금 걸어가자 낮은 감탄사들이 들린다. 포로로마노이다. 캄피돌리오 뒤쪽 언덕에 포로로마노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웅장했던 신전들의 크고 작은 기둥과 건물의 잔해가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곳은 로마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의 인증 사진' 장소이다.
저 건너 팔라티노 언덕에서도 사람들이 포로로마노를 내려다보고 있다. 옛날 건물이나 문화재로 꽉 들어차 있는 공간보다 이렇게 많이 훼손되고 비어 있는 옛 공간이 신기하게도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2천 년 전 이곳을 누볐을 황제와 시민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텅 비어 있기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황제와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위와 힘을 드러내는 건물을 지었을 것이고, 많은 로마 시민들이 이곳을 지나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폐허로만 남아 있다. 새삼 개인의 덧없는 생애와 영속하는 역사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경주 감은사지의 터를 보았을 때 느꼈던 아련함과 시간의 무상함을 여기, 로마에서도 마주한다.
판테온과 포로로마노의 건물들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지만 보존 상태가 극과 극이다. 아직도 가톨릭성당 건물로 사용되는 판테온과 달리 포로로마노의 건물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중세의 이곳은 채석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더 이상 고대의 신전들은 그때 사람들에게 의미가 없었고, 중세 사람들에게 중요한 그리스도교 교회와 성당을 짓기 위해 여기 건물의 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문화재 파괴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곳은 의미 없는 옛 건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대구 청라언덕에 지어진 선교사 주택이 생각났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대구읍성을 헐고 그 자리에 길을 만들었다. 버려진 읍성의 돌들은 백성들의 집이나 공사장 등 여기저기 사용되었다. 그때 선교사의 집을 지을 때도 읍성의 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건 문화재 훼손일까? 아닐까?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도 또 한참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다른 가치 판단을 받게 되려나. 정리되지 않은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에서 빠져나오게 만드는 가이드의 한마디.
“자,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간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새 우산 소나무가 길가에 서 있는 큰 도로가 나온다. 로마에 오니 유적지 근처에는 키가 큰 우산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저기 또 줄이 보인다. 관광객들 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여기도 유명한 곳인가 보다. 줄부터 서고 옆에 뭐가 있나 보니 창살 너머 건물 안에 '진실의 입'이 보인다. 사람들은 진실의 입 속에 손을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가이드는 이렇게 긴 줄이 생긴 건 처음 본다고 한다. 적어도 20~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은 로마 여행에 오면 이곳에서 인증 사진 찍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나 보다. 옛 영화 <로마의 휴일> 영화 한 편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근처에 있는 로마 대전차 경기장에 가서 앉고 싶었다. 혹시 나는 영화 <벤허>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었다. 이왕이면 표정은 살아있게 찍어야지. 영화에서처럼 진실에 입에 손이 잘리는 듯 놀라는 표정을 짓고 찰칵!
마지막으로 방문할 명소는 콜로세움이다. 택시는 캄피돌리오계단, 통일기념관을 지나 포로로마노 외곽으로 한 바퀴 빙 돌아간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있는 쪽에 내렸다. 아래에서 바라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폴레옹이 이 개선문을 바탕으로 파리 개선문을 만들도록 지시했을 정도다. 이 개선문을 따라 로마로 통하는 제국의 중심 도로인 아피아가도가 뻗어 나간다.
어느새 하늘에는 달이 뜨고, 콜로세움에는 조명이 들어온다.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의 위용이 대단하다. 옛 로마인들의 뛰어난 기술에 속으로 ‘멋있다, 대단하다’를 반복하며 그 모습을 감상하였다. 콜로세움을 돌다 보니 막시무스(러셀 크로 役)가 검투를 벌이던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생각이 났다. 영화 속 2세기 경의 그곳에 21세기의 내가 서 있다.
어, 그런데 여기서 반갑게 또 만났다. 낮에 트레비분수에서 친절하게 내 사진을 찍어준 그 한국 청년들이다. 웃으며 다가가 이번에는 내가 먼저 사진을 부탁했다. 역시 이 사람들은 대충 찍지 않는다. 나에게 이런 포즈, 저런 포즈를 취해보라고 시킨다. 덕분에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가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다빈치 공항 면세점에서 그들을 세 번째로 만났다. 이 정도면 인연이다. 아무튼 많이 감사했어요!
어느새 어둠이 내리는 로마 시내를 지나 저녁 식사 장소인 중식당으로 갔다. 이렇게 로마 투어, 특별했던 하루가 끝났다. 로마는 파리와 런던에 비해서 거리가 깨끗하거나 세련된 도시는 아니었다. 프랑스와 영국에 비해 좋지 못한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 탓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더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낡고 오래된 모습이 더 로마에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방송에서 이탈리아 출신 알베르토가 그의 모국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탈리아는 도시마다 다 특징이 다르다고. 한국의 도시들은 어딜 가나 서울에서 보던 도시 모습 그대로라고 해서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서울, 부산, 대구, 목포, 강릉... 우리에겐 정말 다른 모습인데, 어떻게 비슷해 보인다는 걸까?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로마제국 이후로 단일 국가로 쭉 이어져 왔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에마누엘레 2세에 의해 실제로 지금의 이탈리아로 통일되었다. 긴 세월 동안 각 도시마다 별개의 국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각 도시만의 고유한 역사와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는 정말 전혀 다른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로마 역시 고유한 매력이 넘쳤다.
로마를 하루에 다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대 로마제국의 긴 역사와 통일된 이탈리아의 현대사가 모두 담겨 있는 도시. 다소 불친절해 보이고 다혈질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지만, 반도국가 특유의 정서 때문일까? 노래를 좋아하고 가족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점이 우리 정서와 닮은 점도 많다.
이탈리아는 지중해의 쾌적한 날씨, 고대와 르네상스의 천재 조상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특히 로마는 많은 역사 유적과 영화 <로마의 휴일>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빈치 공항으로 향하며 언젠가 로마에 다시 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때는 토스카나의 소도시를 포함한 이탈리아 일주를 꿈꾸게 되었다.
다시 만나자. 차오(Ciao), 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