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여행기 2
1화에 이어지는 <로마여행기 2화>입니다.
투어 택시가 첫 번째로 우리를 내려준 곳은 판테온 근처 작은 광장이었다.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벽면에 엄청 크게 붙어 있는 삼성 갤럭시폰 광고다. 한국에서야 흔하게 지나치지만 외국에서 보니 한국인으로서, 갤럭시 유저로서 반가웠다. 얼마 걷지 않아 원통모양의 건물 뒷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여기가 판테온이구나!
건물을 왼쪽으로 돌아 정면으로 가니 앞은 원통 모양이 아니라 코린트양식의 그리스신전의 모습이었다. 판테온은 만신전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신을 모신 신전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로마 신들을 위한 신전이다. 판테온은 로마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돔 구조로서 건축학적 의의가 높고, 피렌체 두오모를 만들 때도 여길 보고 영감을 받고 만들었다고 한다. 바닥에서 돔 천장까지의 높이와 돔의 지름이 모두 43m 정도로 비슷하다. 그리고 돔 중앙은 뚫려 있어 자연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다.
정면 위에 M.AGRIPPA.L.F.COS.TERTIVM.FECIT라고 써져 있다. AGRIPPA라면 우리가 미술 시간에 석고상으로 많이 보던 그 아그리파? 알고 보니 그 아그리파가 맞다. 찾아보니 쓰여 있는 말의 의미가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이다. 1세기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기에 악티움 해전을 승전한 아그리파가 판테온을 만들어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 판테온은 로마 화재 때 불타 사라지고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예상보다 큰 건물 크기와 많이 파손된 벽이 인상에 남는다.
가이드는 20분의 자유 시간을 주었다. 판테온 앞 광장 앞에는 입장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판테온 안을 들어가 보거나 광장에 있는 젤라또 가게에 가거나 선택할 상황이다. 당연히 난 판테온 입장을 선택했다. 판테온은 외관도 훌륭하지만 안에서 천장도 구경해야 하는 건물이니까.
빠른 걸음으로 내부를 구경한다. 다들 건물 안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천정부터 본다. 천정에 뚫려 있는 구멍에서 햇살이 들어와 다른 한쪽을 비추고 있다. 당시 기술로 어떻게 저런 돔을 쌓아 올릴 수 있었을까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내부를 한 바퀴 쭉 돌아본다.
판테온은 지금도 성당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무덤(!)이기도 하다. 통일의 아버지 에마누엘레 2세 등 황족들과 화가 라파엘로 등 유명인들의 무덤이 여기에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분리하는 우리의 문화와 서양은 다르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새삼 놀랍다. 그리고 한 건물이 2천 년 동안 계속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도 놀랍다.
판테온을 나와 광장 귀퉁이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젤라또 가게에 들어갔다. 앞사람이 주문하는 대표 메뉴를 따라 주문하였다. 주문한 젤라또를 받고 보니 콘에 올려진 젤라또 크기가 너무 커서 살짝 당황했다. 한입 베어 물면서 약속 장소로 갔다. 그랬더니 가이드가 두 가지(판테온 관람과 젤라또)를 모두 해내셨다며 엄지 척을 하신다.
다시 차량에 올라타고 금방 내린다. 방향 감각도 없이 가이드를 뒤따라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 이탈리아 국기와 EU 깃발이 걸려있는 건물 아래에 멈춰 서더니 다시 20분 뒤 여기에서 만나자고 한다. 트레비 분수에 다 왔단다. 정말 몇 발자국 떼지 않아 갑자기 트레비 분수가 떡하니 나온다. 어, 뭐지? 이 갑작스러운 등장은.
우리를 더 놀라게 만든 것은 수많은 인파들이다. 분수 자체는 크고 멋있지만 주변 공간은 건물로 둘러싸여 좁다. 그 좁디좁은 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로마를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 이곳을 들리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렇게 좁은 동네 삼거리에 있어서 트레비 분수라는 이름이 유래한 걸까? 짐작이 실제로 맞다. 세 갈래의 주요 도로가 만나는 삼거리(tre vie)에 위치해 있어 '트레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분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웅장했다. 앞에 조각들도 멋있고, 뒤에 파사드까지 조화롭게 만들어졌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성되었다. 중앙에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가 서 있고, 양쪽 아래에 말을 이끄는 트리톤이 각각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한 마리 말은 트리톤의 말을 듣지 않는 모습이고, 다른 한 마리는 잘 듣는 모습이다. 격정의 바다와 고요의 바다를 표현한 것이라 하는데, 이는 플라톤 영혼삼분설에 나오는 내용과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가장 흔한 인증 사진 장면은 뒤돌아 서서 동전 던지기.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오게 된다니, 그 작은 주문을 누구나 믿어보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날마다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동전을 던지는데, 얼마나 될까? 누가 가져갈까? 그래서 구글에서 바로 찾아보았다. 여행 당시 기준으로 하루 평균 약 515만 원, 연간 약 17억 원(약 140만 유로)이 모인다. 이 돈은 자선단체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재정이 어려운 로마 시에서 문화유적 보수 등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분수 앞은 이미 자리를 잡고 구경하는 사람, 사진 찍고 동전을 던진 후 나오는 사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나는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 셀카만 두어 장 찍었다. 그런데 우연히 옆에서 내 모습을 보던 한국 젊은이들이 고맙게도 사진을 찍어주겠단다. 게다가 나에게 동전도 던지라면서 그 모습까지 동영상으로 담아주었다. 돌아 나올 때, 교황님 선종 조문을 온 것으로 보이는 외국 수녀님 다섯 분도 분수 물멍(!)을 하고 계셨다. 혹시 수녀님들도 동전을 던지실까요?
이번엔 투어 차량이 조금 길게 이동하여 어느 광장 앞에 멈췄다. 거기서 다시 가이드를 따라 걷는다. 이곳도 인파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인원으로 보자면 로마에서 본 최대 인파이다. 현기증이 들 정도다. 가이드는 이곳이 로마의 명동과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거리에 명품 브랜드 매장이 늘어서 있다.
바로 앞이 오드리 헵번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젤라또를 먹는 모습으로 나와서 유명해진 '스페인 계단'이다. 스페인대사관이 있어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계단에 앉아서 쉬거나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햅번처럼 젤라또를 먹는 사람은 없다. 알고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젤라또를 여기에서 먹는 바람에 바닥이 너무 지저분해져서 그 후로 로마시 당국이 벌금을 물리기 때문이라고.
가이드는 계단과 계단 위의 성당 종탑이 잘 보이는 곳에서 우리 일행의 기념사진을 일일이 찍어 주었다. 그리고 여자를 찍어 줄 때는 오드리 헵번으로, 남자를 찍을 때는 그레고리 펙이라 불러주었다. 다들 그 말에 웃었다. 그렇다!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되고 싶은 마음도 한 구석에 있을 것이다. 햅번처럼 원래 자신의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 더구나 긴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떠나온 여행지에서는 말이다.
낭만적인 장소이기도 하고 피곤해서 좀 앉아 쉬고 싶은 마음과, 워낙 복잡해서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던 스페인 광장이었다. 스페인 광장 위로 올라가면 로마 시내가 잘 보인다고도 들었지만, 갈 길 바쁜 우리는 엄두를 못 내고 또 벤츠 승합차에 올랐다.
작가님, 독자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3화 차오, 로마!>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