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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2 - 다자이후 대길(大吉) 산책

일본 규슈 여행기

by 새벽강

*1화(후쿠오카 거리 산책)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ethipia/54


도초지 후쿠오카 대불 산책: '살아서는 신사, 죽어서는 절'

호텔에서 오전 느지막이 거리를 나선다. 오늘은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불교 사찰인 도초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도초지는 기온역 근처에 있다. 예전에 교토에 갔을 때도 기온 거리가 있었는데, 지명이 같다. 빡빡한 일정이 아니라서 거리 모습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걷는다.


일본 골목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이국적이다. 특히 가게 앞에 드리운 천인 '노렌'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가게마다 각양각색의 노렌이 걸려 있다. 노렌은 거리에서 가게 안을 햇볕과 시선에서 분리해 주기도 하고, 노렌의 색깔, 그림, 글자에 따라 그 가게가 어떤 물건을 파는 곳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오늘 본 것 중에서는 오래된 찹쌀떡(모찌) 가게의 알록달록한 노렌이 가장 인상적이다.

아기자기한 물건들 사이에 책가방이 걸린 가게가 있다. 일본 초등학생들의 등마다 매달려 있는 각진 가방인 란도셀이다. 란도셀은 가격이 많이 비싸 처음에는 귀족들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서민들까지 이 가방을 사면서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가방이 되었다. 란도셀에서도 일본 국민의 특성이 보인다. 모두 같은 가방을 메고 튀지 않는다. 그나마 색깔과 매달린 인형에서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정도이다.

도초지 근처 길거리의 노렌
초등학생 국민 가방인 란도셀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멀리 사찰의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도초지가 저기인가 보다. 도심 안에 있는 사찰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다. 그런데 신사에 비해 기도하고 절하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은 드물었다. ‘살아서는 신사, 죽어서는 절’이라는 말처럼 일본인들은 살고 있는 동안에는 신사의 신들에게 기도하고, 죽어서 장례식을 치를 때는 절과 부처님을 찾는다고 한다.

겨울이지만 노란 꽃도 피어있는 사찰 경내는 꽤 단정하고 정갈하다. 건물 배치도 대웅전과 탑, 대불을 모신 건물 등으로 단순하게 배치되어 있다. 일본색이 강한 목탑이 여기가 일본의 절임을 느끼게 해 준다.



도초지 목탑

도초지 입장료는 없지만, 후쿠오카 대불을 보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1층 안내판 사진 속의 부처님의 표정은 그리 인자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 보기로 한다. 계단을 올라 대불이 모셔진 2층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 조금 놀랐다. 일단 예상보다 크다. 대불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니다. 크기보다 더 놀라운 점은 부처님의 표정이다. 안내판 사진 속과는 달리, 나무로 만들어진 부처님의 인상은 훨씬 부드럽고 온화하다. 연예인만 사진과 실물이 다른 게 아닌 모양이다.

대불은 사진 촬영이 불가여서 입구에 있는 안내판 모습을 찍었다


불상 아래로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컴컴한 통로가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어둠에 놀라 휴대폰 플래시를 켜니, 라이트를 끄라는 안내표지가 보여 바로 껐다. 앞뒤 사람의 인기척에 의지하고 벽을 더듬거리면서 겨우 한 바퀴 돌아 빠져나왔다. 다시 부처님 앞으로 무사히 나오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모르고 들어간 이 어둡고 컴컴한 통로는 ‘지옥·극락 순례’ 또는 ‘지옥 체험 코스’라 불린다고 한다. 통로의 칠흑 같은 어둠은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찬 지옥의 상태를 의미한다. 빠져나와 마지막 밝은 곳에서 부처님의 그림이나 온화한 표정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고난을 이겨내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의도치 않게 들어갔는데 이 코스의 의도에 정확히 맞는 체험을 하고 나온 셈이다. 대불의 온화한 분위기를 좀 더 느낀 후 도초지를 나와 근처의 또 다른 절인 쇼후쿠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후쿠오카 사찰을 둘러본 후 전철 타고 다자이후로 가는 길(니시테츠 후쓰카이치역)


다자이후 텐만구 대길 산책: 대길(大吉)을 뽑다

에어비앤비 숙소 체크아웃 시간은 10시다. 늦게 일어 나서 아침 식사를 서둘렀다. 어제 현지 마트에서 구입한 재료를 총동원하여 만든 어묵튀김우동을 먹었다.

일본 가정 집을 체험할 수 있었던 다자이후 숙소(좌), 숙소에서 텐만구로 걸어가는 길 풍경(우)

뒷정리를 하고 캐리어를 밀고 다자이후 텐만구로 향했다. 텐만구는 학문의 신(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을 모시고 있는 신사의 한 종류이다.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구와 교토의 기타노 텐만구가 일본 전국의 텐만구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고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입구가 나온다. 이미 입구의 상가 거리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주로 한국어, 중국어가 들린다. 이 동네에서 잠을 자고 오전에 가면 여유 있게 볼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얼른 다자이후 전철역 코인로커에 캐리어를 넣고 걸어 올라간다.

다지이후텐만구 신사 입구 거리 풍경(좌), 이 거리의 대표 간식인 우메가에 모찌(우)

올라가면서 각자 자신이 내려올 때 들르고 싶은 가게를 '스캔'하기로 했다. 아내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특별하다는 스타벅스 매장, 딸은 토토로 기념품을 파는 곳에, 아들은 일본 전통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가기로 정했다. 그리고 이 거리의 대표적인 간식인 우메가에 모찌도 내려오면서 사 먹기로 했다. 팥앙금이 들어간 찹쌀떡을 구운 우메가에 모찌를 파는 가게가 여럿 줄지어 있다. 처음 먹어도 한국인에게는 익숙할 만한 맛이다.


소 동상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나 있는 신사 입구

텐만구 입구까지 큰 도리이를 몇 개 지나가면 사람들이 줄 서 사진 찍고 있는 소 동상이 나온다. 텐만구 안에 들어온 것이다. 학문의 신을 모신 이곳에는 소 동상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입구의 동상이 가장 유명하다. 소의 뿔과 머리 부분이 반질반질 빛이 난다. 거기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지나간 덕분이다. 한국인들이 즐겁게 사진 찍는 모습에 같이 웃음 지으며 왼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다자이후텐만구는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답게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곳곳에 걸려 있다


일본 특유의 아치 모양 다리가 두 개 나온다. 아마도 도리이가 그러하듯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해 주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다리와 연못 주위 풍경이 아름답다. 연못과 신사 주위로는 나무들이 많은데, 한겨울임에도 초록초록한 나무도 많아서 연못 물빛과 함께 햇빛에 반짝거린다. 두 번째 다리를 건너자, 여느 신사처럼 손을 씻는 물이 나온다. 졸졸 내려오는 물에 손을 씻는다.

한국의 성문 같이 생긴 큰 문이 나오고 텐만구 본 건물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지붕 위에 나무가 가득 자라고 있는 본당 건물이 인상적이다.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이 주관하고 있는 의식에 많은 이들이 예를 갖추고 있다. 학문의 신에게 대학 합격 등을 기원하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다. 구멍이 뚫린 일본 동전을 던져 신과 자신의 존재를 연결하고 기도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절이나 기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여러 부적과 물건을 팔고 있는 상점들이 많아 구경하였다.


부적 등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신사 안 상점들

가게마다 팔고 있는 물건을 보다가 옆에 보니 곳곳에 오미쿠지 셀프 판매대(?)가 놓여 있다. 오미쿠지는 자신의 운세를 점쳐보는 일종의 뽑기인데, 100엔을 넣고 뚜껑을 열어 오미쿠지 종이를 하나 골라서 뜯어보면 된다. 종류는 다섯 가지이다. 대길, 중길, 길, 흉, 대흉. 이 중에서 앞의 세 가지는 좋은 것이니 오미쿠지를 가져가고, 흉과 대흉은 나쁜 점괘이므로 신사 줄에 묶어두고 가면 된다고 한다. 와이프는 괜히 나쁜 결과가 나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거라며 도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재미 삼아 한번 하기로 한다. 나쁜 운세가 나오면 묶어두고 가면 된다고 하니.

재미 삼아 뽑아본 오미쿠지. 나는 중길, 아들은 대길을 뽑았다


100엔 동전을 하나 넣고 많은 오미쿠지 종이 속을 손으로 헤엄쳐 깊은 곳에서 하나를 뽑았다. 좋은 운이 나오길 짧게 기원하고 열어본다. 두구두구... 한자와 히라가나가 섞여 있는 오미쿠지 종이를 펼치니, ‘中吉(중길)’ 글자가 떡하니 나타난다. 오~! 두 번째로 좋은 운이다. 이런 걸 믿지는 않지만 괜찮은 결과에 기분이 좋다.

내 모습을 지켜본 아들이 본인도 하겠다며 하나를 뽑는다. 다시 두구두구... 아들은 가장 좋은 ‘대길’을 뽑았다. 그저께 도초지에서도 아들은 ‘대길’을 뽑았는데, 연이틀 랑데부 홈런을 날린다. 아들은 기뻐하고 지켜보는 가족도 같이 기분 좋았다. 아들에게 올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텐만구에서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나무들이다. 한눈에도 수령이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주위에 가득하다. 한 겨울임에도 초록 잎과 가지들을 드리우고 기도하러 온 사람들의 마음에 생기를 더해준다. 나무를 돌아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며칠간의 후쿠오카와 다자이후 여행은 일본의 깊은 문화와 일상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거리를 산책하며 노렌이나 란도셀 같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했고, 식당과 시장에서는 일본 음식과 현지인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도초지와 다자이후 텐만구 같은 종교 시설을 돌아보며, 각 공간이 일본인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도초지에서의 칠흑 같은 '지옥 체험' 코스는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고,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뽑은 '대길(大吉)' 오미쿠지는 소박한 개인적 소망과 기원은 누구에게나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거리 풍경과 일상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고난과 행운, 현실과 염원이 공존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을까.


오늘도 방문해 주신 작가님, 독자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연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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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