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들 뒤에는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 피렌체 여행기 2

by 새벽강

https://brunch.co.kr/@ethipia/45


가죽 제품과 티본스테이크

두오모에서 출발해서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향해 걸어간다. 많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예상치 못한 건물에서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나타나기도 한다. 가장 많이 보이는 가게는 바로 가죽 관련 제품을 파는 곳들이다. 피렌체는 가죽 세공이 옛날부터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죽 제품을 파는 곳은 상점뿐만 아니라 노점까지 여러 곳이다.

가죽 제품 매장 풍경

일정 중에 가죽 제품 매장을 둘러보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다. 진열대에는 핸드백과 가방, 점퍼 등 옷 종류, 벨트 등 제품이 다양하다. 나는 아내에게 주려고 피렌체 꽃문양이 새겨진 빨간 가죽 열쇠고리를 하나 샀다. 벨트와 지갑은 둘러보기만 하고 못 샀는데, 다음에 가면 사고 싶은 것들이다.

여행에서 쇼핑은 때로는 고민거리다. 간혹 어떤 물건을 사고 돌아 서면 같은 물건이 더 싼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에펠탑 열쇠고리는 에펠탑에서 멀어질수록 싸지고, 콜로세움 기념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물건은 그 순간 그곳을 지나고 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구입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피렌체는 가죽 제품도 유명하지만, 스테이크 요리도 유명하다. 가죽이 소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두 가지 모두 발달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의 명물인 티본스테이크를 먹어보았다. 맛있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큰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했다. 다음에는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서 제대로 한번 맛보고 싶다.

티본스테이크(좌), 모나리자를 그리고 있는 길거리 화가(우)

공화국 광장을 지나간다. 여기서는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와 많은 인파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멈춰 선 곳에는 어떤 화가가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모나리자의 얼굴이 바닥에 그려지고 있는데, 그 실력이 상당하다. 이탈리아인들의 예술적 감성은 이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메디치 가문의 비밀 회랑

보석상점이 늘어서 있는 아르노강 다리 위 모습

일행들과 걷다 보니 어느새 베키오 다리에 도착했다. 다리 위까지 상점이 계속 이어져 사실 나는 아직도 거리인 줄 알았다. 원래 다리 위에는 정육점들이 있었지만, 메디치 가문이 다리를 내려다볼 때 깔끔하지 않다고 보석 상점으로 다 바꾸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반지, 목걸이들이 반짝거리며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다리 중간에 상점 없이 강이 내려다보이는 부분이 있다. 거기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조각가이자 금속 세공가인 벤베누토 첼리니의 동상이 있다. 보석상들이 밀집해 있는 베키오 다리에서 그는 보석상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린다. 동상 뒤로 아르노강을 내려다본다. 이탈리아풍의 알록달록한 건물 사이로 아르노강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궁금하다. 메디치 가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길래 그렇게 지시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디에서 다리를 내려다보았다는 말인가? 그런데 가이드의 설명이 놀라웠다.

베키오 궁에서 베키오 다리를 거쳐 피티 궁전까지 메디치 가문은 그들만이 다닐 수 있는 회랑 형식으로 건물을 만들었다. 그 비밀 회랑을 만든 사람 이름을 따 바사리 통로(Vasari Corridor)라고 불리는데, 길이가 무려 1km에 달한다. 이 통로를 통해 메디치 가문은 외부인들의 시선을 피하고 안전하게 거주지인 피티 궁전과 정부 청사인 베키오 궁을 오갈 수 있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도시를 살피고 길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성당 내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간도 있어서 미사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긴 회랑을 따라 그림을 비롯한 훌륭한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가문의 갤러리 역할도 했다. 지금은 그 회랑을 걸어볼 수 있는 관광 상품도 있지만, 우리는 그냥 그 회랑 아래를 따라 베키오 궁으로 향했다.

비너스의 탄생(이미지출처: 픽사베이)(좌), 단테 조형물(우)

가는 길에 우피치 미술관이 있었다. 우피치 미술관은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등이 전시된 유명한 곳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로마 신화에서 사랑의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그 당시 피렌체 최고 미인인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은 구도가 평면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봐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명작이다. 우피치는 메디치 가문이 소장했던 많은 예술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그냥 지나쳐 온 것이 많이 아쉽다. 단테 생가 박물관과 그가 사랑했던 베아트리체가 결혼을 한 곳으로 알려진 산타 마르게리따 성당도 아쉽지만 그냥 지나간다.


베키오 궁과 시뇨리아 광장

시뇨리아 광장의 인싸 조각상

지금은 현재는 시청과 시의회로 사용되는 베키오 궁(Palazzo Vecchio)에 도착했다. 궁전 앞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에는 수많은 유명 조각상들이 서 있다. 사진으로 보았던 유명한 조각상들이 워낙 많아서 눈이 바쁘다.

가장 유명한 것은 궁전 정문 왼쪽의 다비드상이다. 그 외에도 정문 오른쪽에 있는 바초 반디넬리의 ‘헤라클레스와 카쿠스(커버이미지 오른쪽)’를 비롯해 바다의 신 넵튠(그리스어로는 포세이돈),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 상인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등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메디치가와 피렌체를 일으킨 코시모 1세의 기마상도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말을 탄 사람과 말이 분리된 채 놓여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20년 동안 자주 왔어도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고 한다. 아마도 복원이나 청소 중이었던 것 같다.


다비드 상(상), 넵튠 상(좌), 페르세우스 상(우)
말과 분리되어 있는 코시모 동상


천재들 뒤에는 메디치 가문

피렌체 거리를 걸으면서 수많은 명작을 만났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 도시에서 활동한 천재들이 참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천재들의 활동을 후원한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이야기는 놀라웠다.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가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거대한 부를 이루고, 또 천재들을 후원하게 되었을까?


앞에 나온 기마상의 주인공인 코시모의 아버지 조반니 때에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조반니는 메디치 은행(Banco dei Medici)을 설립했으며 로마와 아비뇽에 두 명의 교황이 존재하는 대분열 시기에 요하네스 23세에게 끝까지 신의를 보여 주었다. 이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로마 교황청의 재무 관리자가 되었다. 이후 유럽의 돈이 피렌체로 몰려들어 빠른 속도로 부가 쌓였다고 한다.


종교(가톨릭)에서 부를 쌓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코시모는 쌓은 부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피렌체의 여러 교회에 기부하고 많은 천재들을 후원했다.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들어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번역하게 하여 학문과 예술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코시모의 아들인 피에로는 알베르티, 도나텔로, 필리포 리피 등의 예술가를 후원하고, 수많은 책들을 수집하고 보급해 르네상스의 초석이 되었다.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초(Lorenzo de' Medici, 1449~1492) 때에 이르러 메디치 가문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예술가를 후원하였다. 그 결과 다양한 르네상스의 많은 걸작품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이런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있었기에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 기여한 점은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손이 없던 그녀는 메디치가의 모든 유산과 문화재를 피렌체시에 기부하였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메디치가의 유산이 피렌체 밖으로 반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 피렌체에 가면 많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피렌체에서 우리는

피렌체 여행을 시작할 때 가졌던 ‘왜 피렌체였을까?’라는 궁금함은 풀렸다. 천재는 모든 시대나 모든 장소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그들의 천재성이 발현될 수 있는 토대도 필요하다. 꽃의 도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과 천재들의 활약으로 르네상스를 꽃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화적 힘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냉정과 열정 사이>와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내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최근에 K-팝, K-드라마 등 대중문화를 필두로 클래식 음악, 과학, 문학 등 많은 영역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인들의 천재성이 더 잘 발휘될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와 한국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그리고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뛰어난 문화와 유적을 전 세계에 더 잘 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고민의 씨앗을 가지고 '천재들과 아름다운 꽃의 도시' 피렌체를 떠난다.


Bella Italia, Bella Corea!


피렌체의 추억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