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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 스코티시!(We are scottish!)

런던 여행기 1

by 새벽강

위 아 스코티시! (We are scottish!)

야간 버스는 한밤을 가르며 새벽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내려주었다. 여행사 미팅이 있는 8시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있었다. 인천공항에 근무하는 대학 동기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 전에 찍은 인천공항 제2터미널

런던행 비행기이지만 대한항공이다 보니 승객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내 옆자리는 덩치 큰 백인 노부부였다. 부인의 키가 나와 비슷할 정도로 부부의 체격이 커서 좌석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하여 노선을 조금 우회하는 바람에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었다. 부부가 창가 쪽에 앉고 내가 복도 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화장실을 가거나 다른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일어나 비켜주어야 했다. 특히 남편은 기내식 식사 후에도 수시로 승무원에게 가서 한국 맥주와 안주를 얻어오곤 했다. 그래서 남편은 나에게 수시로 눈인사와 짧은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런던에 가까워질 무렵부터 남편과 나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부인이 학기를 마칠 무렵 2주 정도 함께 한국 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주로 지냈고 전주와 제주도에도 다녀왔다고. 나는 그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We are scottish! ”

그는 스코틀랜드 사람이고, 글래스고에 산다고 하였다. 우리에겐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나 웨일스 모두 그냥 영국(UK)인데, 그는 콕 집어서 스코틀랜드사람이라고 하였다. 영국이 네 지역이 합쳐진 나라로서 우리와는 국가와 국적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캐리어를 찾다가 다시 만나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잠시 스쳐 지나는 만남이었지만 즐거운 대화였다. 의외로 부부의 영국식 영어가 내 귀에 잘 들려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바로바로 정확히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외국어 번역 앱과 AI가 빠르게 발달하고 있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직접 외국어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옆 자리 스코틀랜드 부부와 히드로 공항에서 헤어지기 전에 찍은 기념사진


히드로 공항의 첫인상

곧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을 듣고 창밖을 보니 런던 시내와 공항의 활주로 불빛이 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런던은 큰 산이 없는 평평한 도시로 보였다. 무사히 착륙하고 제4터미널에 내렸다. 히드로 공항은 전 세계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는 대표적인 공항으로 명성이 높다. 히드로에 내려서 느낀 인상 두 가지.

첫째는 생각보다 공항 시설이 많이 낡았다는 점이다. 공항 내부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기 위해서 공항 청사 밖으로 나왔을 때 보니 보도블록도 낡고 깨진 곳이 많았다. 히드로 공항에서 4 터미널은 오래된 곳이기도 하고, 이걸로 전체를 판단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런 보도블록을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외국인이 수시로 드나드는 영국의 관문공항이지 않은가?

히드로 4터미널 출국장 모습


그리고 입국 수속이 편했다. 기내에서 출국장으로 나올 때 벽에 여러 나라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입국장은 그 국기에 해당하는 출입국 우대 국가와 나머지 다른 국가로 나누어져 있었다. 태극기도 바로 눈에 띄었다. 자국과 미국, EU 및 유럽국가, 그리고 영연방인 호주, 뉴질랜드 외에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이 우대 국가에 해당하였다. 외국 입국 심사는 살짝 부담되는 일이기도 한데 너무 편하고 친절해서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나중에 출국 심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렇게 출국 심사가 간단해도 되나 싶을 정도. 아무튼 최상위권이라 평가받는 대한민국 여권 파워를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이 포함된 출입국 우대 국가 표지판


영국 마트 털어오기

공항에서 바로 버스로 런던 북서쪽 외곽의 호텔로 이동했다. 아직 이른 (아마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어서 동네 구경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호텔 프런트에 부탁해서 근처 지도와 마트 위치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도계로 보이는 프런트 직원이 친절히 알려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깥 풍경이었다. 우리나라보다 고위도이기 때문인지 이미 밖은 캄캄한 밤이었다. 게다가 거리에 가로등 불빛도 약하고 행인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동네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호텔 바에서 같이 온 부부와 맥주 한잔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조식을 먹고 투어 버스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다. 그래서 혼자 동네 산책을 나갔다. 어제는 어두워서 제대로 못 본 런던 외곽 주택가 풍경이 깔끔하게 펼쳐져 있었다. 12월인데도 정원과 화단에 풀이 초록초록해서 놀랐다. 그리고 집집마다 지붕에는 한국에서는 이제 찾아볼 수 없는 TV수신안테나(위성 안테나 아님)가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개와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리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도로에는 출근 차량이 많았다.

영국의 외곽 주택들은 대부분 도로 방향으로 현관이 나 있었다. 그리고 정원은 그 반대쪽에 있었다. 걷다가 보니 집들의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같은 건물인데 반반이 새시가 다르거나, 페인트칠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가만히 보니 건물은 하나지만 두 가구가 각각 관리하고 사는 모습이었다. 지붕색이 다르거나 아예 반쪽만 수리된 경우도 있고, 건물 중앙을 나누는 화단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마트 가는 길에 찍은 런던 교외의 주택가 모습

타운의 중심으로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넓은 주차장을 가진 큰 상가 건물이 나타났다. 마트를 비롯해서 카페, 장난감 가게 등 큰 상가가 쭉 늘어서 있는 구조였다. 마트에는 리들(Lidl)이라고 큰 간판이 붙어 있었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이 간판을 볼 수 있었는데, 유럽 전역에 진출해 있는 독일계 초저가 할인마트 체인이라고 한다. 브렉시트로 EU에서 영국이 탈퇴하기는 했지만, 유럽 지역은 단일 경제권과 유통 구조에 가까웠다.

유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독일계 마트 리들

내가 방문한 리들의 크기는 우리나라 롯데슈퍼나 GS슈퍼보다 살짝 큰 정도였다. 진열은 단순하고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입구와 출구가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마트를 길게 한 바퀴 돌아야만 출구로 나오게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이탈리아 여행 때 여러 번 들어간 고속도로 휴게소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 있는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도 비슷한 방식이다. 사람들의 동선을 최대한 길게 하여 상품 판매량을 늘리려는 마케팅 전략으로 보였다. 또 눈에 띈 점은 마트 입구에 꽃들이 많았다. 한국처럼 마트에 별도의 작은 매장들이 입주해 있는 구조는 아니고 마트 입구에 작은 꽃가게만큼의 각양각색 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영국 리들의 내부 풍경


마트에는 막 오픈한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빵을 사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벽면 한쪽이 다양한 빵들로 진열되어 있었는데, 계속 안에서 바로바로 구워내는 중이었다. 나는 오늘 여행길에서 먹을 간식으로 크루아상과 에그타르트도 구입했다. 오렌지와 귤 중간쯤으로 보이는 과일도 한 망을 사고 초콜릿과 티도 몇 개 담았다. 담다 보니 부피가 너무 커지고 있어서 몇 개를 빼야만 했다. 차도 없이 한참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구입한 간식거리와 셀프 계산대 모습


계산은 출구 근처 셀프 계산대에서 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국마트에서도 셀프 계산대를 사용해 보았지만 시스템이 조금 달라 결국 마트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영국은 유로가 아닌 파운드를 쓰기 때문에 현금을 준비하지 않은 나는 카드 결제를 했다. 한국에서 카드 결제는 삼성페이처럼 전자결제를 하거나 사인을 해도 단말기에 직접 하는 방식인데 영국은 아직 종이에 직접 볼펜으로 사인을 해야 했다. 한 장은 직원이 가지고 한 장의 영수증은 내가 받아왔다. 영국의 마트 물가는 대체로 한국보다 조금 비쌌다. 스위스보다는 싸지만, 이탈리아에 비해서는 비싼 정도.


지붕에 안테나가 보이는 주택가 풍경(좌), 여러 대 눈에 띈 기아 스포티지(우)


마트 밖으로 나오니 아까보다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안개 끼고 비가 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파란 하늘의 런던이라니! 날씨만큼 기분도 상쾌하다. 자체 선택 관광(?)으로 간식거리를 사들고 흐뭇한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간다. 걷다 보니 이제 주택가에 세워진 차량들에도 눈이 간다. 독일차가 가장 많고 일본차도 제법 많았다. 한국차도 가끔 있었는데 가장 많이 본 차는 기아 스포티지 차량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미니 해치백 자동차인 현대 i20도 보였다. 호텔 로비에 들어오니 일행들이 마트에 다녀온 걸 부러워하였다. 사온 과일과 과자를 일행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본격적인 런던 여행의 막이 올랐다.

런던 교외의 해 뜰 무렵 풍경


다음 주에 2화가 발행됩니다.

작가님, 독자님 좋은 가을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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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