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수 없는 문제란 존재하는 걸까?

파푸아의 경계자들

by 김승민

회색 빛이 감도는 백팩을 메고 와이어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짙은 피부 결의 또렷한 눈을 가진 한 여성만이 그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녀의 체구에 비해 큰 원피스 아래로,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 뒤로 한 남성이 그녀의 배를 손으로 덮고 있었다.


“잘 갔다 와, 와이어트. 몸 조심하고!”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와이어트에게 소리쳤다. 그 옆의 남성은 마지못해 인사를 건넨다는 듯이 힘 없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와이어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다, 손목에 걸친 시계를 확인한 후 뒤돌았다. 그의 귓가에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의 발걸음이 분주해 보였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 팔에 걸친 채 달리기 시작했다. 와이어트는 눈앞에 펼쳐진 탁 트인 복도 끝에 자신이 타야 할 번호가 쓰인 표지판을 보았다.


승무원이 웃는 얼굴로 그에게 인사했다.


“A17번 맞으시죠?”


와이어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승무원이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티슈를 건네어주었다.


“운이 좋으시네요. 곧 출발하려던 참이었거든요.”


와이어트는 자신의 팔에 걸친 자켓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티켓을 꺼내 준 뒤, 그는 티슈로 흠뻑 젖은 얼굴을 문질렀다.


“예 맞습니다.”


재차 확인하듯이 승무원이 말했다.


“말루꾸행 비행기 표 확인하겠습니다.”


와이어트의 시선은 승무원 뒤편에 놓인 유리창 너머, 이륙 준비 중인 항공기에 향해 있었다. 맑게 갠 하늘 사이로 햇빛이 그의 눈을 강타했다. 그는 눈을 찡그리고는 다시 승무원을 바라보았다. 승무원의 복장 위로 익숙지 않은 항공사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가루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이곳 브리즈번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향한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좌석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와이어트에 한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자리예요. 아까부터 한참이나 비어 있었거든요.”


구리 빛 피부를 지닌 여성은 그가 앉을 때까지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처음 방문하시나 봐요.” “예?”


와이어트는 흐르는 땀 때문에 내려가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며 여성을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여성의 생김새는 이국적이었다. 갈색 곱슬머리 아래로, 옅게 퍼진 주근깨, 두꺼운 입술과 큰 눈, 그것과 대비되는 아담한 코.


“무례했다면 죄송해요. 보통은 그런 복장을 가져가지는 않아서 물어봤어요.”


이륙을 알리는 안내음이 기내에 울려 퍼졌다. 다시 한번, 낯선 억양으로 방송이 그의 위로 들려왔다. 그는 창가로 비치는 모습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속한 익숙한 곳으로부터 멀어지는 그 모습들을 응시했다.


“모니라고 해요.”


여성이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모니… 저는 와이어트라고 합니다.”


“저는 남편이 브리즈번에서 일을 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홀로 부모님을 만나러 암본에 가요.”


여성은 꽤나 수다쟁이인 듯했다. 자신의 결혼스토리, 하나뿐인 아이, 고향에서의 생활들을 쉴 새 없이 와이어트에게 터뜨렸다.


“아! 중요한 걸 안 물어봤네요. 말루꾸는 왜 가시는 거죠?”


와이어트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 펼쳐진 구름은 이불처럼 두텁게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아래로 이제는 기억 속에 저장될 도시의 윤곽이 아련히 사라지고 있었다.


“글쎄요.”


와이어트의 짤막한 반응을 본 여성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와이어트는 드디어 찾아온 고요 속에서 자신 앞에 놓인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20시간. 그는 그 시간을 즐기기로 한 듯 자세를 편안히 바꾼 뒤,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달콤한 숙면에 빠진 듯, 아이와 같은 표정을 짓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풀 수 없는 문제란 존재하는 걸까?”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