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를 믿고 싶게 만드는 사회
메일함에 낯선 제목 하나가 들어왔다.
<영화 평론가 지망생 모집합니다>
처음엔 그냥 스팸인가 싶었는데 단순한 제목과 ㈜**시네마라는 발신인이 조금 신뢰가 갔다. 아니, 어쩌면 ‘영화’라는 말랑말랑한 낱말 때문일지도 몰랐다. 마우스를 눌렀다.
업무 내용
1.영화 예고편(2분 내외) 시청 후 주관적 평가 작성
(예) “전반적인 스토리 전개가 긴장감 있어요. OST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2. 시청 후 별점(1~5점) 부여
3. 업체 제공 양식에 따라 키워드 기반 작성
그 아래 옅은 회색 바탕에 굵은 고딕체는 또 이렇게 말했다.
하루 일당: 50,000 ~ 200,000원 (당일지급)
월 최대 3,000,000 ~ 5,000,000 원 가능
경력/학력 무관 · 성실한 분 환영
상담문의 방법: 1:1 상담
(실시간 상담)으로 메시지 남겨주세요
뭐지? 하루 일당 5만 원만 잡아도 한 달이면 150이잖아!
나, 성실해. 경력/학력 무관에 나이 무관도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뭐 어쨌든….
솔직히 흔들렸다. 요즘 경제도 어렵고, 글 쓰는 일만으로는 늘 생활이 빠듯했다.
아무래도 무슨 부업이라도 하나 더 해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부터 인터넷을 뒤져 부업을 찾아 헤매다 강의비만 날린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건 영화라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글을 쓴다는 것도, 평점을 매긴다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맨 아래 까만 바탕에 흰 글씨로 ‘지금 상담 신청하세요’ 라는 글씨가 어서 여기를 클릭하라고 유혹했다. 망설이다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꾹 눌렀다.
나름 긴장되면서도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뭔가 하나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하루 2분짜리 예고편 몇 개 보고, 짧은 문장만 쓰면 수익이 생긴다는 게 솔직히 너무 좋아 보였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내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엔 친절했다. 답장도 빠르고, 설명도 자세했다. 정해진 시간도 없이 내가 원할 때 작업하면 된다고 했다. 시간의 제약이 없는 것도, 내게 맞춰준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채팅을 주고받을수록 점점 이상해졌다.
리뷰만 쓰는 게 아니었다. 먼저 예매권을 사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걸 다시 회수해가면서 원금과 원금의 20% 수익을 보장한단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이 시작됐다.
영화 한 편이 얼마더라. 요즘은 극장 안 간 지 오래라서 감도 없었다. 시골에 처박혀 OTT로나 보던 영화. 급히 검색해 보니 평균 15,000원.
하루에 얼마나 예매해야 하냐니까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예매를 많이 하면 된단다.
다시 계산해 보았다. 하루에 열 장을 사면 15만 원. 여기에 20%의 수익 3만 원, 플러스 리뷰비까지 받는다면?
그러면 매일 통장에서 꽤 큰 돈이 나가고, 그보다 조금 더 큰돈이 들어오는 구조.
그게 날마다 반복된다는 건, 내 계좌에서 계속 입금과 출금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민주국가라지만 이런 형태의 입출금은 누가 보아도 이상하지 않은가.
요즘은 국세청에 AI가 도입되어 개인의 반복 거래 패턴을 자동으로 분석한다는데….
찜찜한 기분이 지워지지 않았다.
채팅이 이어졌다. 리뷰비는 얼마냐고 물었다. 리뷰만 해도 된다면 돈이 적어도 그렇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다음엔 세금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을 셈이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다른 사람하고 또 상담하고 있겠지 싶었다.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면서 몇 번씩 채팅창을 확인했다. 더는 답이 없었다.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거다.
이건 단순한 리뷰 알바가 아니었다. 돈을 먼저 써야 하고, 그다음에 수익을 돌려받는 구조였다. 리뷰는 그저 명분이었다. 정체를 알수록 실망스러웠다. 나는 영화가 좋아서, 지금 수입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속았다는 사실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리뷰 쓰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돈 주고 평점 조작하는 구조. 그걸 마케팅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거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어쩌면 리뷰라는 걸 다시는 믿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여전히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 리뷰를 본다. 리뷰가 조작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 안에 어쩌면 하나쯤은 진짜가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한다. 하나하나 살펴보며, 문장이 길거나 감정이 묻어나거나, 사진이 흐릿해도 직접 찍은 것 같으면 조금 더 마음이 간다. 가짜가 너무 많은 세상이라 그런지, 그 안에서 진짜를 찾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내가 그런 진짜를 쓴 적도 있고, 그런 진짜를 보고 안심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진짜가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구조, 돈으로 포장된 거짓이 더 쉽게 노출되는 알고리즘. 그리고 그걸 모른 척 넘기게 만드는 피로감까지.
그러함에도 나는 아직 사람을 믿고 싶다. 크고 작은 사기를 당해본 경험이 있지만, 누군가를 끝까지 의심하며 불안에 떠는 삶보다는 잠시나마 마음 편하게 믿고, 나중에 실망하더라도 그 시간을 견디는 쪽을 선택해 왔다.
순진하단 말도, 어리석다는 소리도 들어봤다. 하지만 이상하게 젊을 때부터 난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마음에는 별다른 변함이 없다.
되돌아보면, 남편과의 사랑도 어쩌면 그랬다.
진심이었음을 알면서도 그때의 내가 얼마나 잘 믿고 쉽게 녹았는지를 생각하면, 그 달달했던 말들이 가끔은 살짝 ‘사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그 시절 나는 진심이었고 그 사랑 역시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니까.
인생이란 그런 거지.
가끔은 사기 같고, 가끔은 선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