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겨우 나를 지켰다

여름밤, 대문을 닫으며

by 루씰

열어 둔 창으로 닫힌 대문이 보인다.

어둠 속에 외등 불빛이 희미하게 대문을 비추고,

그 너머 마을의 조그마한 불빛들이 점점이 떠 있다.


여름엔 문이란 문은 다 열어두고 잔다.

현관문은 저절로 잠기지만 소용없다.

현관을 들어서면 나오는 베란다 공간,

거기도 방충망만 닫힌 채 죄 열려 있다.


시골 여름은 본래 그런 것.

바람을 들이기 위해 창문을 열고,

풀벌레 소리에 귀를 맡기고,

고양이가 살금살금 마당을 걷는 소리까지도

밤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나는 문을 열어둔 채 잠든다.

모든 것과, 거의 모든 이에게.

하지만 대문만은 꼭 닫는다.

별 의미도 없는 문이다.

쇠창살 사이로 손만 넣으면 누구라도 열 수 있다.

담은 문보다 낮아 아이도 훌쩍 넘을 수 있다.


바깥엔 어둠과 적막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가득하다.

그것들이 우리 집을 빙 둘러싸지만,

나는 닫힌 대문 안쪽에 있다.


이 문을 닫지 않으면 오늘 하루를 끝낼 수 없다.

종일 열려 있던 마음을 어디선가 마무리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 속을 내보이고, 기억을 더듬고,

낡은 생각에 다시 젖고 나면

그 어느 때보다 ‘경계’가 필요해진다.


세상은 나를 침범하려 한다.

무심하게, 때로는 무례하게

가끔은 다정한 얼굴로 깊숙이 들어와 박힌다.


나는 많은 걸 열어두고 살아왔다.

몸도, 마음도, 기억도.

그런데 어느새 내 안쪽 것들이 하나둘 스러져 간다.

문이 닫히면 나는 조금 안도하고, 조금 체념하고,

조금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비로소 하루가 끝난다.


오늘도 나는 겨우 나를 지켰다.

대문을 닫았으니까.


밤의 대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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