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 모으는 남자
남편이 드럼통에 오줌을 모은다.
날마다 차곡차곡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드럼통 뚜껑을 열고 조심스레 붓는다.
마치 오래된 의식을 치르듯 그 안에 자신을 한 방울씩 더해 넣는다.
“이게 진짜 친환경이지.”
남편이 뿌듯하게 웃는다.
살아서 남긴 것들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일.
저 드럼통이, 그의 흔적이, 그의 부지런함과 고집이, 그의 시간과 체온이 그 안에 축적되어
어느 봄날엔가 푸릇푸릇 돋아날 것을 안다.
그런데, 그걸 지켜보는 나는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어쩐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투박한 방식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걱정도 된다.
만약 남편이 갑자기 떠나버리면 나는 저걸 어떻게 해야 하지?
텃밭이며, 오줌이며 그가 남긴 작고 단단한 질서들을 나는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지.
해가 바뀌고 계절이 돌고, 그 드럼통 앞에 서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 보면
문득,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래, 그렇게 인간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낸 시간을 저장하고,
다시 그것을 세상에 나누는 거겠지.
가끔 남편 없는 봄을 상상한다.
그가 남긴 드럼통이 텅 빈 채로 마당 한구석에 놓여 있다.
덜컥 겁이 난다.
남편이 없으면 나는 그걸 치우는 법조차 모를 것 같다.
며칠 전,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말했다.
“당신 죽으면 그 많은 오줌, 내가 어떻게 치워?”
남편이 뜬금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바가지로 퍼서 버리면 되지.”
큰 드럼통에 넘실대는 오줌을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내가 소리치자 남편이 버럭 성을 냈다.
“내가 죽긴 왜 죽어?”
“우리 나이가 몇인데,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아?”
“차는 어떻게 타고 다니냐? 십 분 후에 어떻게 될 줄 알고.”
남편은 짜증을 냈고 나는 금세 샐쭉해졌다.
사실 그 대화는 오줌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 없는 삶이 두렵다고.
텃밭에 나갔을 때 당신의 발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을까 겁난다고.
짜증 내는 당신 말에 화난 게 아니라,
그걸 인정하고 있는 나 자신이 서글픈 거라고.
당신이 있어야 겨울이 덜 춥고, 여름이 더 시끄럽고, 내 삶이 삶다워진다고.
당신과 함께 살아낸 시간이 길고 깊어서,
이제는 당신 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겠다고.
우리는 평생 죽음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죽음은 늘 멀리 있었고, 남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서서히 이마 끝에 서늘한 기척이 느껴진다.
몸에 새겨진 작은 통증 하나에 ‘아, 나도 언젠가’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시간 속에 있다.
몸이 굽고 기억은 흐릿해지고,
아침에 깰 때마다 세상이 조금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그런 시절.
죽음을 알기에 삶을 더 투명하게 껴안는 것.
남편이 텃밭을 돌보고, 드럼통에 오줌을 붓고, 낮잠 후 천천히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그 모든 순간이 이제는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은 말해보고 싶다. 조심스레, 정직하게.
“당신과 함께 살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 말을 들은 당신은 또 웃으며 농담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왜 이래? 내가 금세 죽을 거 같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그래.
이렇게 계속 당신과 이 일상을 조금만 더 오래,
조금만 더 천천히 함께 나누고 싶어서 그래.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그리움은 미리 꺼내 보여줄 수 있으니까.
나는 오늘 그 따뜻한 슬픔으로 당신을 한 번 더 바라볼 거야.
찻잔을 건넬 때도, 빨래 개어 당신 옷장에 넣을 때도
살짝 당신을 바라볼 거야.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반복해서 말할 거야.
“지금 함께여서 참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