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지 않는 사랑이
오래간다

절제된 무관심

by 루씰

큰딸이 9월에 우리 부부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데려가겠단다.

혼자서 비행기표 알아보고, 체험 일정 고르고, 호텔 위치 비교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톡을 보내고 전화한다.

사실, 딸이랑 사위는 작년에 다녀온 곳이다. 처음엔 베트남 하롱베이를 가자더니 9월엔 그곳이 우기고, 우리나라 사람이 너무 많아 해외 같지 않단다. 나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네들이 다녀온 곳, 익숙한 곳에 다시 가서 엄마 아빠를 편히 모시겠단다.

“엄마, 마무틱섬에서 스노클링 할 거야. 괜찮아? 아빠가 액티비티 좋아하니까 한두 개쯤은 넣어야겠지?”

“바자우족 수상가옥이라고 있대. 가볼까?”

“호텔은 샹그릴라 탄중아루 리조트로 정했어. 숲 속에 있는 완전 힐링 숙소야.”

다른 사람의 블로그 링크를 몇 개씩 보낸다.

“참, 엄마. **은행 트레블 카드 신청해. 그 카드가 있어야 인천공항 라운지 무료 이용할 수 있어. 맛있는 것도 다 공짜야. 라운지가 뭔지 알지?”

“미국 갈 때 디트로이트에서 환승하면서 가봤잖아. 얜, 엄마가 라운지도 모를까 봐.”

“참, 그랬지. 히히!”

저랑만 미국을 두 번이나 갔는데, 여행 일정 짜느라 다 잊어먹었나 보다.

혼자 애쓰는 걸 보니 끝까지 안 간다고 할 걸 그랬나 싶다.


나는 요즘 여행이 좀 귀찮다. 짐 싸는 것도, 비행기 오래 타는 것도 부담스럽고, 낯선 곳에서의 낯선 하루가 젊을 때처럼 가볍지 않다.

하지만 딸의 그 정성과 마음이 나를 또 흔든다.

‘지금 아니면, 더 늙으면 못 간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작은딸은 미국에 있다.

어린것들 둘 키우느라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여기가 깊은 밤이면 미국은 이른 아침.

나는 웬만하면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 내가 손녀들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전화하면 그 바쁜 틈에 전화를 받으려고 허둥댈까 봐 그저 기다린다.

자정까지 핸드폰을 가득 충전시키고,

혹시나 올지도 모를 연락을 조용히 기다리는 밤이 일상이 되었다.

작은딸이 보내오는 짧은 문자,

“엄마, 자?”

안 잔다고 답하면 딸이 전화를 건다.

그 한 줄에도 얼마나 많은 분투가 담겼는지 안다.

꼬맹이들이 제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피곤한 엄마를 깨우면,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전화할 때도 있다.

꼬맹이들은 제 엄마 배에 올라타고 이불을 덮어씌우고.

참다못한 딸은 “하지 마!” 몇 번씩 소리치며 통화를 이어간다.

영상이지만 딸과 손녀들이 지지고 볶는 일상을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


사람들은, 자식은 부모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릴 땐 맞다.

울고 웃고, 자고 먹고.

모든 게 부모 손끝에서 이어지고, 그 조그만 생명은 엄마 아빠의 하루를 전부 삼켜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자라야 하고, 부모는 놓아줘야 한다.

그게 자연의 질서고, 삶의 도리다.

아이가 컸다고 느꼈을 때,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게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리적인 거리는 쉽게 생긴다.

자취하거나, 유학 가거나, 결혼하면 자연스레 멀어진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건 정서적인 거리다.

‘이제 너는 너의 삶을 살아도 돼’라고, 속으로 말해주는 일이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더 이상 부모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자기 선택에 책임지고, 스스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시간을 겪어야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제 아이는 더 이상 ‘내가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내 마음대로 걱정하고, 조언하고, 다가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는 게 진짜 깊은 사랑의 모습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배웠다.


큰딸에게도 작은딸에게도 특별한 일 없으면 먼저 전화하지 않는 것은,

내가 무심해서가 아니다.

그 애들 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알기에, 내 그리움을 억지로 밀어 넣고 싶지 않아서다.

그저 기다린다. 딸들이 먼저 문을 두드려줄 때까지.

그 기다림 속에 존중이 있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니까 애틋하고 귀하니까 더 붙잡고 싶지만, 그 사랑이 깊어지려면 때로는 거리를 유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큰딸이 짜주는 여행 일정표를 들여다보다 보면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보인다.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애틋함은 더 자란다는 걸, 딸애는 어쩌면 나보다 먼저 알아버린 것 같다.

딸들의 삶의 리듬을 해치고 싶지 않다. 멀리서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사랑이란 항상 가까이 있어 주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거다. 그게 자식이 독립하는 법이고, 부모가 독립하는 방식이다.

딸들의 삶은 이제 내 삶과 평행선 위에 있다. 어디쯤에서 가끔 만날 뿐 매일 붙잡고 살 수는 없다. 그건 외로운 일이 아니라 어른이 된다는 일이고, 그 속에서 사랑은 더 깊어진다.


말레이시아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고 연락이 왔다.

조금은 불편하고 낯설겠지만, 이번 한 번쯤은 큰딸이 건네준 마음의 초대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의 어느 아침, 작은딸이 보내올 짧은 안부를 기다려야겠다.

“엄마, 잘 다녀와.”

나는 오늘도 딸들이 자기 삶에 깊이 뿌리내리길 바란다.

나 또한, 내 삶에 중심을 두며 내 존재로 단단해지려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독립해야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붙잡지 않는 사랑이 오래간다.


마음으로는 지금도 보고 싶고 안고 싶다, 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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