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문득 앞자리에 앉은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단정한 짧은 컷에 대체로 검은 머리인데 짧게 깎은 아래쪽은 희끗희끗했다.
미용사의 솜씨가 반이겠으나 보기 드물게 예쁜 뒤통수였다.
고요한 자세, 반듯한 어깨, 창밖을 응시하는 옆선.
아무 말이 없어도 그 사람의 하루와 생각이 등 뒤에서 전해지는 듯했다.
앞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고운 초로의 얼굴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여인이 문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옆모습이 내가 생각한 그대로다.
“뒷모습이 참 아름다우세요.”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여인이 부끄러운 듯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 그래요? 아유, 고맙습니다.”
“커트도 잘했지만, 뒤통수가 진짜 예쁘세요.”
거듭된 칭찬에 여인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 실례지만 몇 년 생이세요?”
갑자기 여인이 내 나이를 물었다.
“저 **년인데요.”
“어머, 저도 **년이에요. 근데 어쩜 그리 젊으세요?”
“에이, 모자 써서 그래요. 모자 벗으면 늙고 못생겼어요.”
“아이, 뭘요. 진짜 젊으신데.”
“어디까지 가세요? 저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요.”
내가 묻자 소나무가 들어간 무슨 말을 하는데 모르는 곳이었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아, 네. 그럼 친구분, 건강하시고 안녕히 가세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진심이었고, 기분이 좋았다. 여인도 싫지 않았을 것이다.
면 소재지 정거장에서 차를 갖고 기다리는 남편과 집에 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나도, 어쩌면 모두 뒷모습이 아닐까.
‘안녕’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힘없이 돌아섰던 날의 뒷모습.
비틀대며 멀어져 가는 발걸음.
무너진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재빨리 뒤돌아 흐느끼던 좁은 등.
하고 싶던 말 다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던 그날의 뒷모습.
‘앞모습’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다.
그러나 ‘뒷모습’은 꾸미지 않은 채 흘려보낸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의식하지 못한, 내가 보여주지 않던 내 진심이 고스란히 남겨진 어떤 자취 같은 것.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거울로도 사진으로도 완벽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타인의 기억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바로 기억의 형태로 남는 인상이며, ‘기억 속의 나’ 일뿐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재구성된 나.
내가 다 알 수 없는,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모습이다.
그 모든 ‘뒷모습’이 쌓여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증명한다.
그건 단지 고개 숙인 뒤통수가 아니라
말없이 건넨 진심, 무너진 하루, 묵묵한 다정함,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사랑까지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으로 남는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에게 아직도 그립고 따뜻한 잔상으로 남아 있을까.
말없이 곁에 있던 시간
툭 던진 말 한마디
먼저 웃어준 눈빛.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하지만, 여운처럼 오래 남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우리는 결국 큰 말보다 작은 행동, 거창한 장면보다 조용히 스친 뒷모습을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잊어도 그때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
그 따뜻했던 기운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어떤 뒷모습으로 남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