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주인공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두 량인지 세 량인지 복잡한 꼬마열차 승강장에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출발역이라 빈 차일 테니 내가 서 있는 순번쯤이면 앉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열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자리는 이미 찼고, 내가 밀려간 곳은 임산부석 앞이다. 거기 한 노인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른 지하철에서는 대부분 비어 있는 자리다.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
분홍 스티커가 정면에 붙어 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어제의 주인공이야.”
출산율 절벽 시대! 임산부는 애국자입니다
큰 스티커 아래쪽 작은 스티커다.
“이 할아버지도 애국자야. 젊었을 땐 산업역군이었잖아.”
위쪽 조그만 스티커가 애원했다.
제발 주위에 임산부가 있는지 살펴봐 주세요
“응, 알았어. 어, 없는 거 같은데….”
나는 할아버지를 응원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등을 벽에 붙이지 못한 채 문과 좌석을 가르는 손잡이보다 더 낮게 구부리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았다. 머리통 전체가 다 보였다.
‘속알머리가 저리도 없으실까, 그래도 주변머리는 좀 있어 다행이네.’
내 눈길은 호기심으로 바뀌어 할아버지를 계속 살폈다.
허리를 깊이 숙인 할아버지의 모습은 말없이 많은 말을 건넸다.
하루의 무게, 삶의 고단함, 그리고 말 못 할 사연들이 다 담긴 것 같았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걸로 누가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할아버지에게 저 자리는 단지 ‘자리’가 아니라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숨통일 것이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친 날이었을 수도 있고, 지하철 바닥으로 깊이 숙인 그 자세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들리는 듯해서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봐! 지금, 이 순간은 이 할아버지가 진짜 주인공이네, 뭐! 무거운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메고 살아내고 있잖아.”
나는 애원하는 분홍 스티커를 째려보았다.
열차가 풍무역에 도착하자 할아버지 옆자리가 비었다. 내가 앉았다.
할아버지의 스마트폰에 커다랗고 굵은 글씨체로 김포골드라인의 노선도가 보였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풍무예요, 풍무!”
“걸포북변역이 어디예요?”
“두 정거장만 가시면 돼요.”
할아버지의 왼쪽 귀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꽂혔다.
“보청기예요?”
알면서 물었다.
“보청기는 이쪽에 있어요. 근데 귀에 곰팡이가 생겼대요.”
귀에 곰팡이라니 듣느니 처음이다. 할아버지가 연신 스마트폰을 터치한다. 그럴 때마다 무슨 교통편이 척척 뜬다. 듣도 보도 못한 기막힌 앱 같다.
“걸포북변역에는 왜요? 자녀분이 사세요?”
할아버지가 다리 사이에 낀 배낭을 가리킨다.
“택배 좀 전해주러 가는 길이에요.”
“아, 지하철 택배하시는구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85세예요.”
그러면서 자꾸 고개를 들어 달리는 열차의 시커먼 차창을 두리번거린다.
“아직 아니에요.”
내가 다시 말하자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내릴 역 한 정거장 전에 미리 알려줘요. 그래서 이걸 끼는 거예요. 그 소리라도 안 들으면 놓칠까 봐…”
할아버지가 블루투스 낀 귀를 살짝 흔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는지,
“지금 지난 데가 어디라고요?”
“이다음이 무슨 역인가요?”
하며 자꾸 물었다.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어쩌면 앱보다 사람이 더 믿음직했을지도 몰랐다.
“이제 다음 역에서 내리시면 돼요.”
김포시청역을 지나자 다시 확인시켜 드렸다.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이거 봐요. 이제 알려주네.”
나는 들리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비로소 안심하는 얼굴이다.
잠시 뒤 할아버지가 일어서서 작은 배낭을 짊어졌다. 그 자리에 남아 할아버지의 등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60대. 저 할아버지에 비하면 아직 덜 늙었지만 내가 남자라 해도 할아버지가 하는 일을 따라 할 수 없다. 오래 걷기는커녕 가만히 있을 때도 무릎이 씀벅씀벅 쑤신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나이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 귀엔 보청기, 다른 귀엔 앱의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버티는 중이다.
아무도 자신을 더 이상 주인공으로 불러주지 않지만, 여전히 하루의 시간 속에서 주인공으로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택배 배낭보다 삶의 무게와 무심한 일상에서 우리가 만든 외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이 높다는 건 뉴스로 들었을 땐 그냥 수치였지만 오늘 그 할아버지와 몇 마디 나누며 느꼈다. 그건 ‘통계’가 아니라 숨 쉬는 사람, 땀 흘리는 존재, 외롭고 두려운 노년의 얼굴이었다.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은 어제의 주인공.
할아버지가 잠시라도 편히 쉬었기를, 모든 지하철의 정거장마다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아무 걱정 없이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나라가 오기를 바랐다.
